김구(金構, 1649년~1704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사긍(士肯), 호는 관복재(觀復齋)이며,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시호는 충헌(忠憲)으로, 이에 따라 '충헌공'으로도 불린다. 아버지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김징(金澄)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 참봉 이의길의 딸이다. 아들로는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金在魯)가 있으며, 조카로는 영의정 김상로(金尙魯)가 있다.
생애에 따르면, 현종 10년(1669년)에 진사가 되었고, 숙종 6년(1680년) 대과에 급제하여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1682년 정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뒤 사헌부·사간원과 예조·병조의 낭관 등을 거쳐 경연관, 수찬, 승지를 역임하였다. 황해도·충청도·전라도·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대사간, 강화유수, 판결사를 지냈으며, 공조·형조·병조·예조·호조·이조 등 육조의 판서를 모두 역임한 뒤 숙종 29년(1703년)에 우의정에 올랐다. 1704년 모친상을 당한 뒤 지나친 슬픔으로 건강을 해쳐 그 해 12월 18일 5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사헌부와 사간원에 있을 때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결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노산군(단종)의 복위를 주장하여 이를 성사시켰고, 노산군 비 송씨의 묘를 능으로 추봉하는 일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숙종 27년(1701년)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신사대처분 당시 홀로 중론에 반대하며 의연하게 처신한 것으로 전해진다. 병서와 도가류에 정통했고 문장이 간결하며 글씨가 힘찼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몽촌토성(올림픽공원) 내에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역에는 영조 19년(1743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한편, '김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金九, 1876~1949)와는 동명이인이나 전혀 다른 인물이다. 백범 김구의 시호는 충헌이 아니며, 본 항목의 '충헌공' 김구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별개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