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수"는 한국어에서 성(姓)이 '김'인 교수(敎授)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호칭이자, 동시에 한국전쟁 당시 활약한 특정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백과사전적 의미에서 '김교수'라 할 때 주로 지칭되는 대상은 아래에 서술된 역사적 인물이다.
인물 정보
김교수(金敎洙)는 1923년 6월 19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육군 장교이다. 흥남공과대학에서 2년간 수학한 후 월남하여, 1951년 8월 18일 육군종합학교 제32기로 육군 소위(군번 214398)에 임관하였다. 이후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대위로 진급한 뒤 육군 제6사단 제2연대 제2대대 6중대장으로 복무하였다.
교암산 전투와 전사
1953년 7월,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중공군은 금성돌출부에 배치된 한국군 부대를 공격할 '7월 공세'를 계획하였다. 이에 제6사단은 제2연대 전체를 강원도 김화군 원동면에 위치한 교암산에 배치하였다. 교암산은 인근 야산지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방어상 핵심고지였다.
7월 13일 21시 40분경, 중공군 제199사단이 대규모 포격과 함께 공격을 개시하였다. 김교수 대위가 지휘하는 6중대의 모든 방어 진지가 파괴되고 통신망이 두절된 상황에서, 중공군 4개 대대 규모의 병력이 6중대 진지를 포위하였다. 김교수 대위는 포병 사격을 요청한 뒤 중대원들을 이끌고 수류탄전과 육박전(백병전)을 전개하였으나 병력 열세로 중앙이 돌파되었다. 이후 김교수 대위는 포병의 진내사격을 요청하고 중대원들을 동굴로 대피시킨 뒤, 진두지휘 아래 백병전을 계속하던 중 적의 총탄을 복부에 맞고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사망 시점은 1953년 7월 14일로 기록된다.
6중대는 백병전으로 약 8시간 동안 진지를 사수하였으며, 중공군 약 1,200여 명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훈 및 추모
김교수 대위 사후인 1953년 10월 13일,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132호), 화랑무공훈장, 방위포장을 추서하였다. 강원도 철원군 구월정역 월정공원에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2015년 6월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 전쟁 10인의 호국 영웅' 가운데 한 명으로 포함되었다. 2016년에는 전쟁기념관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해마다 7월 14일에는 육군 제6사단에서 김교수 대위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기타 용법
한편 '김교수'는 성이 김씨인 교수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으로도 널리 쓰인다. 또한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에서 '롯본기 김교수', '종로 김교수' 등 특정 크리에이터의 별칭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나, 이들은 위에 서술된 역사적 인물과는 별개의 인물들로서 공식 백과사전 수준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이 문서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