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지성(氣質之性)은 중국 송대 성리학에서 정립된 개념으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핵심 범주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본연지성(本然之性) 또는 천지지성(天地之性)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어원 및 성립
기질지성이라는 용어는 북송(北宋)의 유학자 장재(張載, 1020~1078)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재는 우주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태허(太虛)가 응집된 존재이며, 이때 기(氣)의 맑고 흐림[淸濁]과 바르고 치우침[偏正]의 차이에 따라 인간의 본성에도 두 층위가 있다고 보았다. 그가 말한 전자는 '천지지성'(天地之性), 후자가 '기질지성'(氣質之性)이다. 이후 정이(程頤, 1033~1107)와 주희(朱熹, 1130~1200)가 이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성리학의 심성론(心性論)에 편입시켰다.
개념적 의미
성리학에서 기질지성은 인간이 기(氣)로 구성된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나타나는 본성의 현실적 측면을 가리킨다. 주희에 따르면, 본연지성은 천리(天理)가 인간에게 부여된 그대로의 순수선(純粹善)한 상태인 데 반해, 기질지성은 이 동일한 성(性)이 사람의 형질(形質) 속에 내려와 기의 맑고 흐림, 순수하고 잡됨[淸濁粹駁]이라는 조건의 영향을 받은 상태를 말한다. 주희는 "기질지성은 다만 이 성이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여,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별개의 두 성이 아니라 동일한 성을 두 가지 위상에서 바라본 것임을 강조하였다.
본연지성은 선천적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부여된 도덕적 본질인 반면, 기질지성은 개체별로 기질의 차이로 인해 천차만별의 개별성이 나타나는 원인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악(惡)은 기질지성 자체가 아니라 기질이 본연지성의 발현을 방해하여 과불급(過不及)의 편차가 생기는 데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한국 성리학에서의 전개
조선 성리학에서 기질지성은 본연지성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심화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크게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났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리(理)와 기(氣)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적 경향을 보였다. 그는 순수한 도덕 감정인 사단(四端)은 리에 근거하고, 일반적 감정인 칠정(七情)은 기에 근원을 둔다고 보아 사단칠정 논쟁(四七論爭)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이와 달리 리와 기의 불가분적 관계를 강조하며 일원적 경향을 보였다. 그는 본연지성이 기질지성에 포함되는 관계이므로 사단이 칠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통해 모든 감정의 발동은 기가 주도하며 리는 그에 탑승한다고 설명하였다. 이이에게 기질지성은 본연지성과 별개가 아니라, 기 속에 존재하는 현실태 그 자체였다.
이후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과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의 대립 속에서 기질지성 개념이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 차이를 설명하는 데까지 확장되어 적용되었다.
비판 및 변용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주희의 본연지성·기질지성 이원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기질지성이라는 개념이 악의 원인을 육체의 기질로만 돌리게 되어 도덕적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든다고 지적하고, 대신 천명지성(天命之性)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종합하면, 기질지성은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적 세계관에서 인간 본성의 현실적·개별적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으로, 본연지성과의 관계 설정을 둘러싸고 중국과 한국의 성리학 전통에서 광범위한 철학적 논의를 촉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