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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의 메리

기즈의 메리(Mary of Guise, 프랑스어: Marie de Guise, 1515년 11월 22일 ~ 1560년 6월 11일)는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인물로,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의 두 번째 아내이자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메리 스튜어트)의 어머니이다. 프랑스어식 이름인 마리 드 기즈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출생과 가문

기즈의 메리는 프랑스 로렌 지방의 바를르뒤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즈 공작 클로드, 어머니는 앙투아네트 드 부르봉으로, 그녀는 열두 명의 형제자매 중 맏딸이었다. 기즈 가문은 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으며, 그녀의 형제들 중에는 기즈 공작 프랑수아와 로렌 추기경 샤를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키가 커서 약 1.80미터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첫 번째 결혼과 스코틀랜드와의 결혼

1534년, 18세의 나이에 프랑스의 대시종장인 루이 2세 도를레앙-롱그빌 공작과 결혼했으나, 남편은 1537년에 사망했다. 이후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가 모두 그녀와의 결혼을 원했다. 메리는 헨리 8세의 청혼을 거절했으며, 1538년 제임스 5세와 결혼하여 스코틀랜드 여왕이 되었다. 1540년 2월 22일 홀리루드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제임스 5세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제임스, 로버트)과 딸 메리를 두었으나, 두 아들은 1541년 4월 14시간 간격으로 잇달아 사망했다. 1542년 12월 제임스 5세가 사망하면서, 생후 6일이었던 딸 메리가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즉위했다.

섭정으로서의 활동

딸 메리 1세가 미성년자였던 동안, 초기에는 제임스 해밀턴(애런 백작)이 섭정을 맡았으나, 1554년 기즈의 메리가 섭정으로 취임하여 1560년 사망할 때까지 스코틀랜드를 통치했다. 그녀의 섭정 기간은 프랑스-스코틀랜드 동맹(올드 동맹)을 유지하고 딸의 왕조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는 종교 개혁 운동이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을 막을 수 없었다. 1559년 존 녹스가 주도한 개신교 세력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내전 상태에 빠졌고, 잉글랜드의 개입으로 프랑스군은 리스에서 포위되었다.

사망과 유산

기즈의 메리는 1560년 6월 11일 에든버러 성에서 수종(부종)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시신은 프랑스로 운송되어 랭스의 생피에르레담 교회에 안장되었으나, 그 무덤은 프랑스 혁명 중에 파괴되었다. 그녀의 사망은 이후 에든버러 조약 체결로 이어져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그녀를 지적이고 외교적이며 불굴의 정신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가 로잘린드 K. 마셜은 그녀가 "자신의 안락함, 이익,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희생하며 딸을 위해 스코틀랜드를 친프랑스 가톨릭 국가로 보존하기 위해 길고 절망적이며 결국 희망 없는 투쟁을 벌였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영화 《엘리자베스》(1998)와 드라마 《레인》 등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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