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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읍성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고려 공민왕 5년(1356년)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세종 3년(1421년)에 축성이 결정되어 세종 7년(1425년)에 완성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1996년 5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3년 12월 27일에는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다.

읍성(邑城)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성을 말한다. 기장읍성은 북쪽의 낮은 산과 남쪽의 평지를 아우르는 평산성(平山城)의 형태이며, 평면 형태는 말각방형(抹角方形,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다. 성곽의 둘레는 약 1,000m, 높이는 최고 약 4m 정도이며, 너비는 7m 내외이다. 평지 구간의 성벽은 안팎을 모두 돌로 쌓았고, 지형이 높은 구간의 바깥쪽 성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웠다.

동문·서문·남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반원형의 옹성(甕城)이 설치되었으며, 동문터 근처에는 적대(敵臺)가 있다. 성벽에는 치성(雉城) 2개소가 확인되었고, 서벽과 남벽, 남동벽을 둘러싼 해자(垓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벽 해자의 너비는 5.5~6m 내외, 깊이는 0.6~1.5m 내외로 확인되었다.

성내에는 관장이 집무를 보던 동헌(東軒), 향사당(鄕士堂), 객사(客舍) 등의 관아 건물이 있었고, 성 밖에는 망풍정(望風亭), 망루대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장관청(將官廳)만 복원되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사창, 인리청, 군성관, 면금루, 척서루, 식파루, 영방, 군기고 등 여러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장읍성은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부터 기장 지역의 백성과 관아 시설을 보호하기 위하여 축조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기장 죽성리왜성을 쌓으면서 기장읍성의 돌을 반 이상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시기에 성벽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성 내부에 학교와 주택이 들어서면서 성벽은 더욱 훼손되었고, 일부 구간은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북벽·동벽·옹성·적대·해자 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기장읍성은 경사면에 지대석과 기단석을 그대로 쌓는 사직선기단(斜直線基壇) 축조 방식을 사용하였고, 성벽 몸체에 가늘고 긴 직사각형 면석을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고려 시대의 성곽 축조 수법과 조선 시대 연해읍성(沿海邑城)의 축조 수법을 혼용한 것으로, 읍성 축조 기법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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