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기일원론

기일원론(氣一元論)은 동아시아 성리학(性理學)의 철학 체계 중 하나로, 우주 만물의 근원적 실체를 오직 '기'(氣) 하나로 보는 학설이다. 유기론(唯氣論)이라고도 한다. 이일원론(理一元論)이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다.

개념과 기본 입장

기일원론은 세계의 유일한 시원이자 모든 사물을 이루는 물질적 존재인 '기'가 그 자체 내에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두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둘의 상호작용에 의해 모든 사물이 발생하고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기일원론에서 '이'(理)는 기의 존재와 운동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법칙성이나 조리(條理)에 불과한 것으로, 기에 앞서거나 기를 규정하는 별도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아니다. 즉, 이는 기의 속성 내지 내재적 법칙으로 격하된다.

중국에서의 연원

기일원론의 연원은 북송(北宋)의 장재(張載, 1020~1077)의 태허설(太虛說)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재는 우주 공간에 가득 찬 '태허'(太虛)를 기의 원형으로 보았으며, '허즉기'(虛卽氣), 즉 허(虛)가 곧 기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명대 중기의 나흠순(羅欽順, 1465~1547), 명말 청초의 왕부지(王夫之, 1619~1692), 청대 중기의 대진(戴震, 1724~1777)에 의해 그 이론이 완성되었다.

한국에서의 전개

한국에서는 조선 중기의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이 기일원론 철학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서경덕은 우주 만물의 궁극적 근원을 '태허'(太虛)라는 형이상적 개념의 기로 보았으며, 이 태허가 스스로의 힘으로 운동·변화하여 음양의 이기(二氣)로 분화하고, 이것이 서로 엉기고 모이고 흩어지는 작용을 통해 우주 만물을 생성·존재시킨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한 '기자이'(機自爾)설을 통해 기의 운동 원인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 자체에 내재해 있음을 주장하였고, '기불멸'(氣不滅)설을 통해 기는 모였다 흩어질 뿐 소멸하지 않는다는 물질 보존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서경덕 이후 조선 후기의 임성주(任聖周, 1711~1788)는 서경덕의 기일원론을 계승하여 '기일분수'(氣一分殊)라는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는 기가 시공간적으로 무한하며 우주에 충만한 것으로, 만물의 발생·발전·소멸은 기 자체의 생성 의욕으로부터 일어난다고 보았다. 또한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신기'(神氣)라는 독자적인 실체 개념을 설정하여 기일원론을 발전시켰으며, 자신의 학문 체계를 '기학'(氣學)이라 명명하였다.

주요 개념

  • 태허(太虛):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기의 원형 상태. 담연무형(淡然無形)하여 형체가 없으나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운 실재이다.
  • 기자이(機自爾): 기가 외부의 힘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운동·변화한다는 원리.
  • 기불멸(氣不滅): 기는 모였다 흩어질 뿐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는 주장.
  • 기일분수(氣一分殊): 근원적 기는 하나(一氣)이지만, 그것이 구체적 사물로 현현할 때 각기 다른 양태로 분화된다는 이론.

의의

기일원론은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의 우월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주리론(主理論) 및 이기이원론과 대비되며, 물질적 실체인 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한 유물론적 경향의 철학으로 평가된다. 한국 철학사에서 기일원론은 서경덕-임성주-최한기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