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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도설

기기도설(奇器圖說)

기기도설은 1627년 중국 명나라 말기에 간행된 서양 기계공학 지식을 소개한 백과사전식 서적이다. 정확한 원제는 《원서기기도설록최》(遠西奇器圖說錄最)이며, 일반적으로 《기기도설》로 약칭된다.

저자와 편찬 과정

기기도설은 스위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요한 테렌츠 슈렉(Johann Terrenz Schreck, 중국명 등옥함鄧玉函)이 구술하고, 명나라 출신의 왕징(王徵, 1571~1644)이 이를 한역(漢譯)하고 삽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요한 테렌츠 슈렉은 본래 의사 출신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린체이 아카데미(Accademia dei Lincei)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1619년 중국을 방문하여 마카오, 항저우, 베이징 등을 거치며 선교 활동을 하였다.

왕징은 어려서부터 기계 제작에 관심이 많았고 수학 기초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가톨릭에 귀의하여 필리푸스라는 세례명을 받은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약 한 달간의 편역 작업을 거쳐 1627년 정월에 기기도설 3권을 완성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왕징 자신이 직접 고안한 기기를 소개한 《신제제기도설》(新製諸器圖說)과 합본으로 양저우에서 간행되었다.

내용과 구성

기기도설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과 제2권은 역학(力學)에 대한 이론적 해설과 이를 도해한 기하학적 도면을 담고 있으며, 제3권은 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제작한 각종 기계를 그림으로 도해한 기술도(技術圖)가 수록되어 있다. 인력과 동물의 힘을 이용한 전통적 기술과 르네상스 이후 서양에서 발달한 기술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중국 과학 기술의 변환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에는 무게중심(重心), 지렛대(槓桿), 기어(齒輪) 등 기계공학 관련 용어들이 한역되어 실렸으며, 일부 용어는 후세까지 전승되어 사용되었다. 삽화에는 당시 이탈리아의 기계 설계사 아고스티노 라멜리(Agostino Ramelli), 공학자 비토리오 종카(Vittorio Zonca), 프랑스의 기계 설계사 자크 베송(Jacques Besson) 등의 작품을 복제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식 회화로 각색되었으나 서양 기계의 삽화를 비교적 상세하고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다.

역사적 의의

기기도설은 서양의 문자와 기호를 사용해 서양의 역학을 소개한 최초의 서적으로, 그 원리를 해석하는 데 전통적 중국 자연철학의 개념을 사용한 점에서 이른바 '예수회 과학'의 초기 양상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조선에도 유입되었으며, 정확한 유입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선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1792년 수원 화성(華城)을 축조할 때 참고하여 거중기(擧重機)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이 책을 정약용에게 직접 건넸다는 기록도 있으며,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통해서도 유통된 것으로 확인된다. 1796년 완공된 수원 화성의 축조에 사용된 정약용의 거중기는 기기도설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대적 평가

기기도설은 16세기까지의 서양 과학 기술을 최초로 중국에 체계적으로 소개한 저술로서, 동아시아 과학 기술 교류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7세기 전반 중국에서 간행된 서양 과학 저술 중 하나로, 서양 기계공학 지식이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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