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쿠(일본어: 伎楽, Gigaku)는 일본의 전통 가면무용극(假面舞踊劇)의 하나로, '기악(伎樂)'으로도 표기된다. 한국어권에서는 주로 '기가쿠' 또는 '기악'으로 불린다. 외래에서 전래된 악무(樂舞)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주로 사원의 불회(佛會)에서 공연되었다.
전래와 역사
일본의 정사인 《니혼쇼키(日本書紀)》 스이코(推古) 천황 20년(612년) 조에 따르면, 백제 사람 미마지(味摩之)가 귀화하여 중국 오(吳, 남부 중국 지역)에서 배운 기악무를 일본에 전하였다. 이후 사쿠라이(櫻井)에 안거하면서 소년들을 모아 기악무를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악의 본래 기원은 오늘날 남아 있는 가면 등의 유물을 통해 고대 티베트·인도 지역에서 유래하여 서역(西域)을 거쳐 오나라를 통해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가쿠는 8세기 중반 무렵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후 중국 및 한반도에서 새로 전래된 고아한 무악(舞樂, 부가쿠)에 압도되면서 급격히 쇠퇴하였다.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이르러 사실상 소멸하였다고 여겨지며, 현재는 그 공연의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재현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일부 존재한다.
공연 방식
기가쿠는 음악에 맞춰 무언극(無言劇) 형태로 공연되었다. 나라 시대에는 피리(笛), 허리북(腰鼓), 징(鉦盤)의 세 악기가 사용되었고, 헤이안 시대 초기에는 징 대신 심벌즈 형태의 타악기(銅鈸子)가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상세한 공연 기록으로는 고마노 치카자네(狛近真)가 저술한 《교훈초(敎訓抄)》(1233년)가 있다. 이에 따르면 악기 조율 후 전 출연진이 사원 경내를 행진(行道)한 뒤, 사자춤과 각종 독무 및 우스운 촌극으로 구성된 연출이 이어졌다고 한다. 연출의 내용은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었다.
기가쿠 가면(伎楽面)
기가쿠에 사용된 가면은 '기가쿠멘(伎楽面)'으로 통칭되며, 치도(治道)·사자두(獅子頭)·오공(吳公)·금강(金剛)·가루라(伽樓羅)·곤륜(崑崙)·오녀(吳女)·바라문(波羅門)·역사(力士)·대고부(大孤父)·취호왕(醉胡王) 등 총 14종이 있었다. 가면은 야외 공연에 적합하도록 매우 크게 제작되었으며, 머리 뒤를 감싸는 형태로 눈·코·입이 크게 뚫려 있다. 표정은 극도로 과장되었으며 오동나무·녹나무·노송나무 등의 재료가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가면 대부분은 나라 시대(710~784년)에 제작된 것으로, 호류지(法隆寺)·도다이지(東大寺) 및 쇼소인(正倉院) 등에 보존되어 있다. 이들 가면은 이후 노(能)·부가쿠(舞樂)·교겐(狂言) 등 일본의 여러 전통 연극 형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영향
기가쿠는 일본의 여러 공연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노 가면은 기가쿠 가면 중 오공·오녀 등의 조형적 특징을 일부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곤륜·치도 가면의 과장된 표현은 노의 귀신 가면 등과 유사성이 지적된다. 다만 노 가면이 기가쿠 가면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는 차이가 있다. 기가쿠는 쇠퇴 이후 그 정확한 연출 방식과 내용이 대부분 단절되어, 오늘날 학계에서는 남아 있는 가면 유물과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부분적으로만 그 실체를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