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畿)'는 동아시아 전통 행정 개념에서 왕도(王都)를 둘러싼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경기(京畿)', '왕기(王畿)', '기현(畿縣)' 등 복합어의 구성 요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원과 개념의 기원
'기'의 개념은 중국 주(周)나라의 봉건제에서 비롯되었다. 주대에는 천자가 머무는 곳을 '경(京)'이라 하고, 경을 둘러싸는 땅으로서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직할지를 '기'라 하였다. 《주례(周禮)》에는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즉 방천리(方千里)를 '왕기'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기'를 천자의 땅으로서 왕성에서 멀고 가까움에 따라 구분되는 영역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기'는 원래 천자의 거주지인 왕성을 중심으로 한 일정 반경 이내의 땅을 의미하는 개념이었다.
중국에서의 행정적 적용
당(唐)나라에서는 이 개념을 실제 행정에 적용하여 수도 인근 지역을 경현(京縣, 적현赤縣이라고도 함)과 기현(畿縣)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이는 수도 주변을 특별히 관리하기 위한 행정 구획으로, 이후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주변국들에도 전파되었다.
한국에서의 수용과 변천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에 '기'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행정 구역에 적용되었다.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지방 행정 구역을 십도(十道)로 개편하면서 개경 주변에 적현 6개와 기현 7개를 설치하였다. 이후 현종 9년(1018년)에 이들 현을 묶어 왕도 개성부의 외곽 지역을 공식적으로 '경기(京畿)'라 칭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기는 왕실과 중앙 관청의 경비를 조달하고 왕도를 보위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된 특별 행정 구역이었다.
고려 말기인 1390년(공양왕 2년)에는 경기가 도(道) 단위의 지방 조직으로 변모하여 좌도와 우도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에는 수도가 한양으로 옮겨짐에 따라 경기의 영역도 한양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광주·수원·여주·안성 등 동남 지역이 경기로 이속되는 등 현재의 경기도와 유사한 행정 구역이 형성되었다. 조선 시대의 경기는 왕도와 왕실을 보위하는 기능을 지녔으며, 개성·광주·수원·강화 등 요충지에는 유수부와 군영이 설치되었다.
현대적 의미
현대 한국의 행정 구역 명칭인 '경기도(京畿道)'는 이 '기'의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기호(畿湖)'라는 용어는 경기와 충청(호서) 지역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이처럼 '기'는 고대 동아시아의 수도 주변 지역을 지칭하는 행정·지리적 개념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한국의 행정 구역 명칭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