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고각(汲古閣)은 중국 명(明) 말기에서 청(清) 초기에 걸쳐 활동했던 학자 모진(毛晋, 1599~1659)의 개인 장서루(도서관)이자 출판사이다. '급고(汲古)'라는 명칭은 《장자(莊子)》 지락편의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는 구절과, 한유(韓愈)의 시에서 "옛 우물에서 물을 퍼내니 긴 두레박줄 얻었어라(汲古得修綆)"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옛 학문을 깊이 궁구하려는 태도'를 우물에서 물을 퍼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모진은 이 '급고각'을 자신의 당호(堂號)로도 삼았다.
모진은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한 후, 어머니 과씨(戈氏)의 조언에 따라 과거 응시생들이 사용할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하였다. 천계(天啓) 6년(1626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상속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20명이 넘는 각수(목판 제작자)를 고용하여 본격적인 출판에 나섰다. 급고각은 강소성(江蘇省) 상숙(常熟) 영춘문 밖 칠리교에 소재하고 있었으며, 숭정(崇禎) 15년(1642년)에는 화가 왕함회(王咸繪)에게 의뢰하여 《우산모씨급고각도(虞山毛氏汲古阁图)》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림에는 아홉 채의 건물과 두 곳의 연못, 이여정(二如亭)과 녹군정(綠君亭)이라는 정자가 묘사되어 있다.
급고각은 약 84,000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으며, 경(經)·사(史)·자(子)·집(集)의 순서로 분류하여 보관하였다. 특히 송(宋)·원(元) 시기의 판본을 중시하였다. 급고각에서 출판한 서적(급고각본)은 경사(經史)에서부터 사곡(詞曲), 소설, 필기류에 이르기까지 600여 종에 달한다. 대표적인 간행물로는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인 《십칠사(十七史)》, 《진체비서(津逮秘書)》, 《육십종곡(六十種曲)》 등이 있다. 모진은 희귀본 수집에 비용을 아끼지 않아, "다른 집에서 책값으로 천금을 낼 때 이 집 주인은 천이백금을 냅니다"라는 문구를 집 문에 붙이기까지 하였고, 현지에서는 "360일 내내 장사하러 다니느니 모씨 집에 책이나 한 권 파는 게 낫지"라는 속담이 유행할 정도였다.
모진 사후에는 그의 다섯째 아들 모의(毛扆)가 급고각을 물려받아 운영을 이어갔다. 급고각의 옛 터는 사가병진(沙家浜鎭) 조빈촌(曹浜村)에 있었으나, 현재는 연못이 농경지로 개간되고 건물도 사라져 터만 남아 있다.
급고각본은 조선 후기 한반도에도 전래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급고각본을 접하고 관련 언급을 남겼으며, 정조(正祖)는 급고각본 《설문해자》의 간행을 두고 모진의 아들 모의를 칭찬하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회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에 다수의 급고각본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