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저술한 금석문 고증서이다. 1852년(철종 3년)경에 완성되었으며,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 또는 '운연과안록'(雲烟過眼錄)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서울대학교 등에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직접 본 금석(金石)에 대한 논고'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실제 내용은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巡狩碑) 가운데 함흥 황초령(黃草嶺)에 있는 황초령비와 북한산 비봉(碑峰)에 있는 북한산비, 두 종의 비문에 대한 판독(判讀)·해설·고증에 집중되어 있다. 김정희는 이 두 비를 두 차례에 걸쳐 조사하고, ≪삼국사기≫·≪당서(唐書)≫·≪위지(魏志)≫ 등 국내외 역사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여 합리적인 고증을 시도하였다.
구체적으로 황초령비에 대해서는 비문에 기록된 '무자년(戊子年, 568년)'과 '8월 21일 계미일'의 역일(曆日) 일치 여부를 중국 주(周) 무제(武帝) 본기와 대조하여 고증하였고, '진흥(眞興)'이 시호(諡號)가 아닌 생존 시의 칭호임을 논증하였다. 또한 비문에 등장하는 관직명(잡간·대아간·급간·대사·소사·길지 등)과 인명(거칠부·복동지·비지부지 등)을 하나하나 판독하고 그 의미를 고증하였다.
북한산비에 대해서는 비문 첫째 줄에서 '진흥(眞興)'의 '진(眞)'자를 확인하여 이 비가 무학(無學)의 비가 아니라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내었고, '남천(南川)'이라는 글자를 근거로 건립 연대를 568년에서 576년 사이로 추정하였다. 말미에는 당시 함경감사였던 친구 권돈인(權敦仁)에게 황초령비의 원석(原石)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와, 동행했던 조인영(趙寅永)에게 보낸 서간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비문 판독에 있어 크기·위치·형상·실체 감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을 기하였으며, 청나라의 고증학을 수용하여 한국 금석학(金石學)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저술로 평가된다. 김정희의 초기 견해를 담은 ≪완당선생전집≫ 권1의 <진흥왕이비고(眞興王二碑考)>에 비해, ≪금석과안록≫은 더욱 정밀한 고증을 통해 내용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