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은 금동(金銅, 즉 구리에 금을 도금한 재질)으로 제작된 보살의 앉아 있는 형상의 불상을 통칭하는 용어이자, 동시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구체적인 문화재의 명칭이기도 하다.
문화재 지정 사항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보살좌상은 2002년 12월 2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8.8cm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여말선초, 麗末鮮初)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위키백과에는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기재되어 있어, 편찬 시점에 따라 시대 비정에 차이가 존재한다.
유래 및 수습 경위
이 불상은 원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사(廣德寺) 인근에서 수습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개인 소장가가 보유하다가 서울역사박물관이 금동불좌상과 함께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다.
형태적 특징
전체적인 구도는 밑변이 약간 짧은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우며, 훤칠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비례를 보인다. 가부좌한 하체에 비해 상체가 약간 크지만 무릎을 다소 높게 표현하여 균형을 맞추었다. 이마 부분을 덮은 머리카락에는 단이 지어져 있어 원래는 그 위에 보관(寶冠)을 얹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유실되었다. 정수리 부분은 밋밋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별도로 상투(寶髻)를 만들어 붙인 흔적은 없다.
머리에서 귀 앞쪽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은 귓불을 가로질러 어깨 위에서 한 번 매듭지어진 후 다시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는데, 이러한 머리카락 표현은 고려 후기 불화 및 금동불좌상에 흔히 나타나는 형식이다.
착의법 및 장식
착의법은 통견식(通肩式)으로 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으며, 그 위에 넓은 숄과 같은 피건(被巾)을 걸친 특이한 형태이다. 가슴과 복부의 양감은 풍부하게 표현되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연주문(連珠文) 형태의 목걸이를 걸치고 있다. 목걸이 중앙에는 세 개의 작은 원판이 달려 있고, 그 아래로 세 가닥의 짧은 연주문 영락(瓔珞) 장식이 늘어져 있다.
대의(大衣) 자락이 상박(上膊)만을 덮고 하박(下膊)은 노출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인데, 이러한 표현은 티베트 계통 불상 양식(소위 '라마양식')의 영향을 받은 고려 말~조선 초 작품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양팔에는 연꽃 장식이 달린 팔찌(완천, 腕釧)를 착용하고 있다.
수인(手印)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왼손은 배 앞으로 내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은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고 있다. 이 수인은 아미타여래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도 동일한 수인을 취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불상은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 가운데 하나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손을 들고 있는 점으로 보아 우협시 보살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세지보살(대세지보살)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식적 의의
이 금동보살좌상은 고려 후기 불상의 '단아양식(端雅樣式)'을 계승하면서도 조선 초기 양식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단아양식의 전형적인 보살상이 명상에 잠긴 듯하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보이는 데 비해, 이 보살상은 다소 차분하고 경직된 느낌을 준다. 또한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양이 많지 않고, 이마 위 머리카락의 마디 처리가 단순한 점 등에서 후대적 요소가 나타난다. 주조 상태는 다소 거칠지만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며, 뒷면에 도금이 일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