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사(金剛寺, 金剛砂)는 동음이의어로,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불교 사찰의 이름으로서의 '금강사(金剛寺)'이고, 다른 하나는 연마재(硏磨材)로서의 '금강사(金剛砂)'이다.
1. 사찰명으로서의 금강사(金剛寺)
금강사는 '금강(金剛)'과 '사(寺)'의 합성어로,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바즈라(vajra)'의 한역으로,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진리를 상징하는 불교 용어이다. 이에 '금강사'는 금강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강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은 한국 역사상 여러 시기와 지역에 걸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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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금강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에 있었던 신라 시대의 사찰로, 승려 명랑(明朗)이 창건했으며 금광사(金光寺)라고도 불렸다. 『삼국유사』에는 명랑이 당나라 유학 후 귀국하는 과정에서 용왕의 청으로 용궁에 들어가 설법하고 황금을 시주받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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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금강사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 있던 백제 시대 사찰의 터로, 200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에 '금강사'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위치가 확인되었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출토 유물과 가람 배치로 보아 백제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면적 약 7,800평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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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금강사: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문자명왕 시기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없으며, 인근의 청암리 사지와의 연관성이 추정되기는 하나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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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파주 금강사: 경기도 파주시 파평산에 있던 사찰로, 고려 인종 때 윤언이(尹彦頤)가 자신의 집을 바쳐 법당을 만들었으며, 그의 호인 금강거사(金剛居士)를 따라 금강사라 불렸다고 한다. 폐사 이후 불상들이 부속 암자였던 미타암으로 옮겨져 미타사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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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금강사: 현재 대한민국에는 부산 동래구, 김해시, 구미시, 강릉시, 공주시, 옥천군 등 여러 지역에 '금강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 금강사는 1951년 승려 월명(月明)이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알려져 있고, 구미 금강사는 1954년 철우선사가 세운 사찰로 소장 전적과 금란가사가 지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2. 연마재로서의 금강사(金剛砂)
금강사(金剛砂)는 공업용 연마재를 뜻하는 용어로, 석류석(가넷, garnet)의 가루 또는 에머리(emery)라고 불리는 연마재를 가리킨다. 영어 표현은 'emery'이다. 유리나 금속 가공 표면을 연마하거나 연마지(사포)에 도포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금강사지(金剛砂紙)는 한쪽 면에 금강사 연마 입자를 부착한 종이나 천을 말하며, 샌드페이퍼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3. 종합적 판단
'금강사'는 사찰명과 공업용 연마재라는 두 가지 뚜렷한 용도로 실재하는 단어이며, 특히 불교 사찰명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역사적 용례가 풍부하게 확인된다. 사찰명으로서의 금강사(金剛寺)는 한국 불교사에서 여러 시기와 지역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된 보편적인 사찰 명칭이며, 연마재로서의 금강사(金剛砂)는 표준국어사전에 등재된 공업 용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며, 백과사전적 정보가 충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