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글리치 아트

글리치 아트(Glitch art)는 디지털 데이터를 손상시키거나 전자 장치를 물리적으로 조작하여 미학적 목적으로 디지털 또는 아날로그 오류를 사용하는 관행을 가리키는 예술 사조이다. 기술적 결함 또는 오작동을 뜻하는 '글리치(glitch)'를 의도적으로 유발하거나 포착하여 창작의 매체로 활용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용어의 역사

기술적인 용어로서 '글리치'는 특히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이미지, 비디오, 오디오 및 기타 디지털 가공물에서 발생하는 오작동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지칭한다. 이 용어는 1990년대 중반 실험적 전자음악의 한 장르를 설명하기 위해 음악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VJ와 시각 예술가들이 글리치를 디지털 시대의 미학으로 받아들이면서 '글리치 아트'는 일련의 시각 예술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역사적 배경

글리치 아트의 선례는 20세기 초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렌 라이(Len Lye)의 영화 《어 컬러 박스》(A Color Box, 1935)와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작품 《TV 마그넷》(TV Magnet, 1965)이 초기 사례로 거론된다. 미디어 아트에서 글리치를 사용한 초기 예로는 제이미 펜턴(Jamie Fenton)과 라울 자리츠키(Raul Zaritsky)가 발리(Bally) 비디오 게임 콘솔을 조작하여 제작한 《디지털 TV 디너》(Digital TV Dinner, 1978)가 있다. 코리 아크에인절(Cory Arcangel)의 《파나소닉 TH-42PWD8UK 플라스마 스크린 번》(Panasonic TH-42PWD8UK Plasma Screen Burn, 2007) 역시 대표적인 현대 작품으로 꼽힌다.

제작 기법

글리치 아트의 제작 방식은 여러 범주로 구분된다. 마이클 베탄코트(Michael Betancourt)는 다섯 가지 영역을 제시했다.

첫째, 데이터 조작(데이터벤딩, databending)은 디지털 파일 내부의 정보를 변경하여 글리치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미지 파일의 바이너리 데이터를 텍스트 편집기 등으로 직접 수정하거나, 압축된 디지털 비디오에서 I-프레임을 제거하여 화면 왜곡을 유발하는 데이터모싱(datamoshing)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정렬 오류(misalignment)는 특정 유형의 디지털 파일을 의도와 다른 프로그램으로 열어 발생하는 글리치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비디오 파일을 오디오 파일처럼 처리하는 경우 등이 예시로 든다.

셋째, 하드웨어 고장(hardware failure)은 기기의 물리적 배선이나 내부 연결을 변경하여 오류를 유발하는 회로 밴딩(circuit bending) 기법을 포함한다. VHS 플레이어나 게임 콘솔의 내부 부품을 손상시켜 독특한 시각 효과를 얻는 방식이 사용된다.

넷째, 정렬 오류(misregistration)는 영화 필름 등 역사적 아날로그 매체의 물리적 노이즈—먼지, 스크래치, 얼룩 등—에 기인하는 왜곡을 의미한다. 1990년대 초 독일의 실험 음악 그룹 오발(Oval)이 CD 뒷면에 그림을 그려 스킵을 유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섯째, 왜곡(distortion)은 글리치 아트에서 가장 초기에 등장한 방식이다. 백남준이 텔레비전 화면 근처에 강력한 자석을 배치하여 화면을 왜곡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손실 압축(lossy compression) 과정에서 발생하는 압축 아티팩트(compression artifacts)를 의도적으로 시각 스타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으며, 로자 멘크만(Rosa Menkman)의 작업과 독일 사진가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의 《Jpegs》 연작이 그 예이다.

주요 전시 및 행사

글리치 아트 관련 행사로는 200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최초의 글리치 아트 심포지엄, 2010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 GLI.TC/H, 2015년 크라쿠프에서 열린 "글리치 아트 이즈 데드"(Glitch Art is Dead) 전시 등이 있다. 2020년에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글리치 시즌"(An Exercise of Meaning in a Glitch Season) 전시가 개최되었고, 2023년에는 독일 뮌헨의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에서 "글리치: 간섭의 예술"(GLITCH The Art of Interference) 전시가 열렸다.

학술적 논의

글리치 아트는 실패의 미학(aesthetics of failure)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논의된다. 디지털 매체의 물질성—압축, 지연, 비트 부패(bitrot), 화면 번인, 센서 노이즈 등—을 드러냄으로써 완벽하고 매끄러운 상업적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미술사 및 미디어 이론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로자 멘크만의 《글리치 순간(The Glitch Moment(um), 2011)》과 레거시 러셀(Legacy Russel)의 《글리치 페미니즘(Glitch Feminism, 2020)》 등이 대표적인 관련 저서로 꼽힌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