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코 학살(Massacre of Glencoe, 스코틀랜드 게일어: Murt Ghlinne Comhann)은 1692년 2월 13일 스코틀랜드 고지대(Highlands)의 글렌 코(Glen Coe) 계곡에서 발생한 집단 살해 사건이다. 아가일 백작 보병 연대(Earl of Argyll's Regiment of Foot) 소속 병력이 글렌코의 맥도널드 가문(Clan MacDonald of Glencoe) 일원 약 30명을 살해하고 주택을 불태운 사건으로, 영국-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학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배경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제임스 7세(스코틀랜드) 겸 제임스 2세(잉글랜드)가 폐위되고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즉위하였다. 이에 반발한 자코바이트(Jacobite) 세력은 1689년 봉기를 일으켰으나 1690년 5월 크롬데일(Cromdale) 전투 이후 사실상 진압되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고지대 씨족들의 통제를 위해 1691년 6월, 충성 서약 조건으로 12,000파운드의 지급을 제안했다. 1691년 8월 26일 왕실 포고령은 1692년 1월 1일까지 서약하는 자에게 사면을 부여하고, 기한을 넘긴 자에게는 가혹한 응징을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학살의 원인
글렌코의 맥도널드 가문 수장인 맥아이언(MacIain of Glencoe)은 1691년 12월 30일 포트 윌리엄으로 가서 충성 서약을 시도했으나, 현지 지휘관이 서약을 받을 권한이 없어 인버라레이로 보내졌다. 그는 1692년 1월 6일 치안판사 앞에서 서약을 마쳤으나, 기한을 5일 초과했다는 이유로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반면 다른 씨족들은 기한을 넘겼음에도 사면을 받았다. 역사학자들은 맥도널드 가문이 표적이 된 배경으로 씨족 정치, 정부의 고지대 통제 필요성, 그리고 당시 스코틀랜드 국무장관이었던 스테어 경(Lord Stair)의 강경 대응 방침을 지목한다.
학살 전개
1692년 1월 하순, 로버트 캠벨(Robert Campbell of Glenlyon)이 지휘하는 약 120명의 병사가 '무료 숙영' 명목으로 글렌코에 도착하여 10여 일간 맥도널드 가문의 환대를 받았다. 2월 12일, 스테어 경의 명령에 따라 제임스 해밀턴 중령이 4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계곡 북쪽 출구를 차단했고, 던컨슨 소령이 이끄는 400명의 병력이 글렌리언 부대와 합류하여 학살을 실행했다. 2월 13일 새벽 5시, 병사들은 잠든 맥도널드 가문의 사람들을 기습 공격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약 30명이 사망했으며, 맥아이언을 포함한 가문 구성원들이 살해되었다. 맥아이언의 두 아들은 탈출에 성공했다.
조사 및 여파
이 사건은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1695년 위원회가 설치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신뢰 하의 살육'(Slaughter under trust)이라는 스코틀랜드 법률에 따라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윌리엄 3세 본인이 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에 법적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테어 경은 국무장관직에서 해임되었으나 1700년 정계에 복귀했다. 생존자들에 대한 보상 청구는 무시되었고, 이들은 1715년과 1745년 자코바이트 봉기에 참여했다.
역사적 의의
글렌코 학살은 18세기 전반 자코바이트 운동의 지속에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했으며, 이후 스코틀랜드 민족사에서 배신과 억압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매년 클랜 도널드 협회(Clan Donald Society)에 의해 추모 행사가 개최된다. 이 사건은 조지 R. 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중 '붉은 결혼식'(Red Wedding)의 주요 역사적 영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