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국제군사재판(極東國際軍事裁判, 영어: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IMTFE)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 지역의 전쟁 범죄인을 재판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제 군사 재판소의 재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도쿄 전범재판(東京戰犯裁判, Tokyo Trials) 또는 도쿄재판이라고도 불린다.
설립 배경 및 법적 근거
1945년 7월 26일 연합국이 발표한 포츠담 선언 제10항은 전쟁 범죄인에 대한 엄중 처벌을 명시하였다. 일본이 1945년 9월 2일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포츠담 선언의 조항을 이행할 것을 약속함에 따라, 1946년 1월 19일 연합국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특별 선언과 '극동국제군사재판소 조례'에 의해 재판소가 설치되었다.
재판 진행
재판은 1946년 5월 3일부터 1948년 11월 12일까지 약 2년 반에 걸쳐 도쿄 이치가야(市谷)의 구 육군사관학교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재판소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화민국, 프랑스, 인도,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영국, 미국, 소련 등 11개국이 참여한 재판관과 검사진으로 구성되었으며, 재판장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윌리엄 웹(William Webb) 경이 맡았다.
기소 및 판결
60여 명 이상의 전쟁 범죄 용의자 중 28명이 A급 전범(평화에 반한 죄)으로 기소되었다. 기소 죄목에는 침략 전쟁의 계획 및 공모, 각국에 대한 침략 전쟁 수행, 전쟁 포로 학대 등이 포함되었다.
판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사형(교수형) 7명: 도조 히데키(前총리), 도이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마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히로타 고키
- 종신형 16명: 아라키 사다오, 하시모토 긴고로, 하타 슌로쿠, 히라누마 기이치로, 호시노 나오키, 가야 오키노리, 기도 고이치, 고이소 구니아키, 미나미 지로, 오카 다카즈미, 오시마 히로시, 사토 겐료, 시마다 시게타로, 시라토리 도시오, 스즈키 데이이치, 우메즈 요시지로
- 유기금고형 3명: 도고 시게노리(20년), 시게미쓰 마모루(7년), 나시모토 모리마사(6개월)
- 판결 전 병사 2명: 나가노 오사미, 마쓰오카 요스케
- 소추 면제 2명: 오카와 슈메이, 무타구치 렌야
사형 판결은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 구치소에서 집행되었다.
역사적 의의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유럽의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적 사법 정의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다만 인도 측 재판관 라다비노드 팔(Radhabinod Pal)이 전원 무죄를 주장하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등 재판의 공정성과 승자의 재판(Victor's Justice)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