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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공방전

정의 그리스 공방전(영어: Battle of Greece)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 그리스 왕국을 침공하여 벌어진 일련의 군사 전투를 일컫는다. 독일 측의 작전명은 '마리타 작전'(독일어: Unternehmen Marita)이며, 그리스 측에서는 '독일의 그리스 침공'(그리스어: Γερμανική εισβολή στην Ελλάδα)으로도 불린다. 이 전투는 추축국의 발칸 전역의 하위 작전에 해당한다.

배경 및 경과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리스군은 영국의 공군 및 물자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의 1차 공격을 격퇴하였고, 1941년 3월에는 반격에 나서 알바니아 보호령 지역까지 진격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941년 4월 6일, 독일군이 불가리아를 통해 침공(마리타 작전)하면서 전세가 급변하였다. 당시 그리스 육군의 대부분은 알바니아 전선에 배치되어 있어 독일군의 제2전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스는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군으로부터 소규모 증원을 받았으나, 수적으로 열세였다. 메탁사스선(Metaxas Line)은 충분한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독일군은 이 방어선을 돌파하여 알바니아 지역의 그리스군을 포위 항복시켰다.

종결 연합군은 테르모필레(Thermopylae)에서 독일군을 일시 저지하며 철수 준비 시간을 확보하였다. 1941년 4월 27일 독일 육군이 아테네에 입성하였고, 4월 30일 그리스 남부 해안까지 진격하여 약 7,000명의 연합군 병력을 생포하였다. 같은 해 5월 크레타 전투로 그리스 전역의 완전한 정복이 마무리되었으며, 이후 그리스는 독일·이탈리아·불가리아의 분할 군정 체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영향 아돌프 히틀러는 이후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 실패의 원인 중 하나를 베니토 무솔리니의 그리스 침공 실패와 이에 따른 발칸 전역 지연으로 돌렸다. 다만 독일의 역사학자 안드레아스 힐그루버(Andreas Hillgruber)는 이는 히틀러가 자국의 패배 책임을 동맹국 이탈리아에 전가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실제로 그리스 공방전으로 인한 발칸 전역의 지연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추축국의 전쟁 수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교전 세력

  •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추축국)
  • 그리스 왕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연합국)

병력 및 피해 규모

  • 독일군: 약 680,000명, 전차 1,200대, 항공기 700대 / 사망 1,099명, 부상 3,752명, 실종 385명
  • 이탈리아군: 약 565,000명, 전차 163대, 항공기 463대 / 사망 13,755명, 부상 63,142명, 실종 25,06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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