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울(Grey Owl)은 아치볼드 스탠스펠드 벨라니(Archibald Stansfeld Belaney, 1888년 9월 18일 ~ 1938년 4월 13일)가 사용한 필명이자 공개 활동명이다. 그는 1930년대에 캐나다에서 활동한 작가, 대중 연설가, 환경보호론자였다.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캐나다로 이주한 뒤 자신을 스코틀랜드인 아버지와 아파치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半) 원주민이라고 주장하며 활동했으나, 사망 직후 실제로는 원주민 혈통이 전혀 없는 잉글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애 초기와 캐나다 이주
벨라니는 1888년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주 헤이스팅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 강한 관심을 보였으며, 1906년 18세의 나이로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는 온타리오주 북부 테마가미 호수 지역에서 나무꾼과 덫 사냥꾼으로 생활하며 오지브웨이족과 교류했고, 원주민의 생존 기술과 자연 관리 방식을 익혔다. 이후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캐나다 원정군에 입대하여 프랑스 전선에서 저격수로 복무했으며, 전쟁 중 오른발에 총상을 입어 영구적인 장애를 안게 되었다.
그레이 아울로의 변신과 환경보호 활동
1925년경부터 벨라니는 '그레이 아울'이라는 이름으로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거트루드 버나드(아나하레오)와 함께 생활하며 덫 사냥을 하던 중 비버의 처지를 목격하고 비버 보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9년에는 영국의 잡지 《컨트리 라이프》에 첫 기사를 게재했고, 이후 《캐나다 산림과 야외》 등의 매체에 환경 관련 글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1931년부터는 캐나다 국립공원청(도미니언 파크스 브랜치)에서 '공원 동물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라이딩 마운틴 국립공원과 프린스 앨버트 국립공원에서 활동했다. 그는 비버 보호를 위한 여러 영화를 제작했고, 특히 비버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던 당시 상황에서 비버 보존을 위한 대중적 홍보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
벨라니는 《마지막 변경의 사람들》(1931), 《야생의 순례자들》(1935), 《빈 오두막 이야기》(1936) 등의 저서를 출판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영국, 미국, 캐나다를 순회하며 수백 회의 공개 강연을 했으며, 당시 캐나다 최고의 유명 작가이자 연설가로 손꼽혔다. 1937년에는 버킹엄 궁전에서 조지 6세 국왕 앞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정체 폭로와 사후 인식
1938년 4월 13일, 벨라니는 서스캐처원주 프린스 앨버트에서 폐렴으로 4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 직후, 그가 잉글랜드 태생으로 원주민 혈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었다. 이는 당시 대서양 양쪽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그는 이후 원주민 혈통을 속인 '프리텐디언'(pretendian)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그의 실제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그의 환경보호 활동과 문학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지속되었다. 1999년에는 리처드 애튼버러가 감독하고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한 영화 《그레이 아울》이 개봉되었다. 또한 그가 머물렀던 라이딩 마운틴 국립공원과 프린스 앨버트 국립공원의 오두막은 보존되어 오늘날 방문객에게 공개되고 있다.
평가
그레이 아울은 생전에는 '최초의 대중적인 환경보호론자'로 평가받았으나, 사후에는 원주민 정체성 위조와 여러 허위 행적이 확인되면서 그의 삶이 복합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환경보존 메시지의 진정성과 정체성 위조의 윤리적 문제는 학술적 연구와 대중적 논의에서 여전히 다루어질 만한 주제로 남아 있다.
주요 저서
- 《마지막 변경의 사람들》(The Men of the Last Frontier, 1931)
- 《야생의 순례자들》(Pilgrims of the Wild, 1935)
- 《사조와 비버 사람들 모험》(The Adventures of Sajo and her Beaver People, 1935)
- 《빈 오두막 이야기》(Tales of an Empty Cabin,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