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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

개요

그랜드 투어(Grand Tour)는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 상류층 청년들을 중심으로 행해진 장기 해외여행 관행을 일컫는 역사적 개념이다. 특히 영국 귀족과 부유한 젠트리(지주계급) 출신의 젊은 남성들이 성인이 된 시점, 대략 21세 전후에 가정교사나 가족을 동반하여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학문과 교양, 예법을 익히고 고전문화를 체험하는 교육적 통과의례의 성격을 띠었다.

용어의 기원

'그랜드 투어'라는 표현은 가톨릭 성직자이자 여행 작가였던 리처드 라셀스(Richard Lassels, 약 1603-1668)가 저술한 《이탈리아 여행(The Voyage of Italy)》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1670년 파리에서 사후 출간되었으며, 라셀스는 서문에서 여행이 지적·사회적·윤리적·정치적 측면에서 '완성된 여행자'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서술하였다.

특징과 구성 요소

그랜드 투어의 전형적인 특징은 학자인 브루스 레드포드(Bruce Redford)의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요소로 요약된다.

  1. 여행의 주체는 젊은 영국인 남성 귀족 또는 젠트리 계층이다.
  2. 여행 전 과정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동행 가정교사(travelling tutor)가 동반된다. 이러한 가정교사는 '베어 리더(bear-leader)'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조련사가 곰을 데리고 도시를 순회하던 관행에 빗댄 표현이다.
  3. 로마가 여행의 최종 목적지로 설정된다.
  4. 평균 여행 기간은 2~3년 내외이다.

역사적 배경

17세기 말 이전까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귀족 교육은 대체로 국내 대학에서의 수학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약 1700년경부터 종교 갈등이 완화되고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고전문화의 유산이 풍부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외국의 선진 문물과 예법을 익히려는 수요가 커졌다. 이에 따라 영국뿐 아니라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 유럽의 문화적 변방으로 분류되던 국가들의 귀족층도 자녀들을 그랜드 투어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랜드 투어는 대략 1660년경부터 번성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절정에 달했으며, 1840년대 철도 교통의 대중화와 함께 쇠퇴하였다.

전형적인 여정

그랜드 투어의 여정은 개인의 관심사와 재정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했지만, 영국인 여행객을 기준으로 한 전형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았다.

  • 영국 도버에서 출발하여 영국 해협을 건너 벨기에의 오스텐트, 또는 프랑스의 칼레나 르아브르에 도착하였다.
  • 파리에 머물며 프랑스어, 춤, 펜싱, 승마 등의 교육을 받고 프랑스 상류사회의 예법을 익혔다.
  • 이후 스위스의 제네바나 로잔에 체류한 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입하였다.
  • 이탈리아에서는 토리노,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시에나 등을 거쳐 궁극적으로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에서는 고대 유적과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였다.
  • 일부 여행객은 나폴리로 이동하여 음악을 공부하거나,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허큘라네움과 폼페이의 발굴지, 베수비우스 화산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 귀국할 때는 프랑스를 거쳐 되돌아가거나, 독일과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영국으로 복귀하는 경로를 택하였다.

여행 중 활동

그랜드 투어 중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가정교사에 의해 규제되었다. 수학, 역사, 지리 등 학문적 교육 외에 승마, 펜싱, 춤, 테니스 등의 신체적 훈련도 여행 일정에 포함되었으며, 가정교사는 교육 상황을 주기적으로 부모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체류 기간이 길어지고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무도회나 파티 참석, 관광, 사치품 쇼핑 등이 주요 활동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문화적 의의와 영향

그랜드 투어는 참여자들이 이탈리아의 예술품, 고대 유물, 서적 등을 수집해 귀국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한 여행자들은 이러한 수집품을 자신의 저택에 전시함으로써 상류사회 편입의 증거로 삼았다. 가정교사로 활약한 인물로는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등 근대 초기의 저명한 지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랜드 투어는 후대의 관광 산업과 여행 안내서(가이드북)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18세기 중반 이후 그랜드 투어 여행지에 대한 실용적 안내서가 다수 출간되었으며, 이는 현대 여행 핸드북의 시초로 간주된다.

19세기에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증기선과 철도가 보급되면서 그랜드 투어는 과거의 '일생에 한 번뿐인' 특권 계층의 의례에서 점차 대중적 여행으로 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토머스 쿡(Thomas Cook)이 시작한 패키지 여행이 대중관광 시대의 선구적 사례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쇠퇴

그랜드 투어는 유럽에서 고전문화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고, 철도와 증기선 등 대중적 교통수단의 보급으로 대륙 여행이 보다 쉽고 저렴해지면서 그 특권적 의미를 상실하였다. 또한 19세기 미국에서는 신흥 부유층이 그랜드 투어의 형식을 차용하여 유럽을 여행하는 사례가 늘었으며, 마크 트웨인의 《천진난만한 해외여행(The Innocents Abroad, 1869)》은 이러한 현상을 풍자한 저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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