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베트 문화(Gravettian)는 후기 구석기 시대 유럽의 고고학적 기술복합체(archaeological industry)이다. 대략 기원전 33,000년 전(BP)부터 출현하여 오리냐크 문화(Aurignacian)를 대체하였으며, 기원전 22,000년경 최후 빙기 극대기(Last Glacial Maximum) 무렵에 대부분 소멸하였으나 일부 요소는 기원전 17,000년경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대륙 전체에 걸쳐 비교적 통일적으로 나타난 마지막 문화로 평가된다.
명칭은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Dordogne) 지역의 라 그라베트(La Gravette) 유적에서 처음 식별된 데서 유래하였으며, 1938년 도로시 개러드(Dorothy Garrod)에 의해 정의되었다.
분포와 지역 변이
그라베트 문화는 서유럽에서 러시아 평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분포하였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지역 변종으로 구분된다. 서부 그라베트 문화(Western Gravettian)는 주로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동굴 유적을 통해 알려져 있으며, 동부 그라베트 문화(Eastern Gravettian)는 중앙유럽과 러시아의 평원 지역에 분포하였고 파블로프 문화(Pavlovian)를 포함한다. 동부 그라베트인은 매머드 전문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굴이 아닌 야외 유적지에서 주로 발견된다.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에서는 이후 솔뤼트레 문화(Solutrean)가 뒤를 이었고, 이탈리아, 발칸반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지역에서는 에피그라베트 문화(Epigravettian)로 발전하였다.
생활과 사냥
그라베트 문화는 수렵채집 사회로서 극도로 추운 빙하기 환경에 적응하였다. 석기 도구로는 곧고 무딘 등날을 가진 작은 첨두기(그라베트 포인트, Gravette point)가 특징적이며, 이를 이용해 대형 사냥감을 사냥하였다. 또한 그물을 사용하여 소형 동물을 포획하였으며, 활과 화살을 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는 동굴이나 반지하식 원형 주택을 사용하였으며, 소규모 마을 형태로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였다.
식단은 고지방·고열량 육류에 크게 의존하였으며, 매머드, 하이에나, 늑대, 순록 등의 대형 동물부터 토끼, 여우까지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였다. 해안 지역에 거주한 그라베트인은 식단의 20~30%를 해산물에 의존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물과 예술
그라베트 문화의 상징적 유물은 비너스 소상(Venus figurine)으로, 주로 상아나 석회암으로 조각되었다. 거대한 가슴, 넓은 엉덩이, 두드러진 둔부를 가진 여성상을 특징으로 하며, 얼굴 세부 묘사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100점 이상의 비너스 소상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예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레스퓌그의 비너스(Venus of Lespugue), 돌니베스토니체의 비너스(Venus of Dolní Věstonice), 브라상푸이의 여인(Lady of Brassempouy)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동굴 벽화, 상아 조각, 뼈 도구, 장신구 등 다양한 예술품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체코의 파블로프 I(Pavlov I) 유적에서는 직물이나 바구니 세공의 흔적이 찰흙 조각에 음각으로 남아 있어, 그라베트 문화가 섬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매장 관행과 신체적 특징
그라베트 문화는 매장 의례를 발달시켰으며, 고인과 함께 장신구나 부장품을 묻는 관행이 확인된다. 러시아의 순기르(Sungir) 유적에서는 보석으로 치장된 매장이 발견되었다.
신체적 특징으로, 그라베트인은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남성의 평균 신장은 약 183.5cm로 당시뿐 아니라 역사 시기를 통틀어서도 매우 큰 편이었으며, 체중은 67~73kg 정도로 추정된다. 여성의 평균 신장은 약 158cm, 평균 체중은 약 54kg이었다.
유전학
최근 고대 DNA 분석 결과, 그라베트 문화를 형성한 인구는 유전적으로 동질적인 단일 집단이 아니라 여러 유전적 계통으로 구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동부 그라베트 문화를 형성한 집단은 베스토니체 클러스터(Věstonice cluster)에 속하며, 서부 그라베트 문화 집단은 푸르놀 클러스터(Fournol cluster)에 속한다. 두 집단 모두 선행하는 오리냐크 문화의 인구로부터 유전적 연속성을 보인다. 서부의 푸르놀 클러스터는 이후 서유럽의 솔뤼트레 문화와 마그달레니아 문화(Magdalenian)의 조상이 된 반면, 후대의 에피그라베트 문화는 그라베트 문화 집단과 유전적으로 뚜렷이 구별된다. 시베리아의 말타 문화(Mal'ta culture, 약 24,000 BP)는 비너스 소상 등의 유사성으로 인해 그라베트 문화와 연관되기도 하나, 유전학적으로는 유럽 그라베트 문화와의 직접적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