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암 유창환 및 유치웅 묘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무신이었던 규암(圭巖) 유창환(柳昌煥, 1827~1904)과 그의 아들 유치웅(柳致雄, 1858~1932)의 묘소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묘역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사대부 묘제의 특징과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규암 유창환(圭巖 柳昌煥) 유창환은 1827년에 태어나 1904년에 사망한 인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그는 늦은 나이인 1882년(고종 19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한성부 서윤, 동부 승지, 진주 병마우후 등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주로 지방관이나 무관직을 수행했다. 특히 임오군란 이후 국정 혼란기에 민심 수습과 치안 유지에 힘썼으며, 청렴하고 강직한 인품으로 명망이 높았다. 그의 호는 규암(圭巖)이다.
유치웅(柳致雄) 유치웅은 1858년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한 유창환의 아들이다. 그는 학문에 정진하여 정시(庭試)에 합격하였고,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조선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공직에 몸담아 국가에 봉사하였다.
묘소의 특징 규암 유창환 및 유치웅 묘는 가족 묘역 내에 조성되어 있으며, 아버지 유창환의 묘가 상단에, 아들 유치웅의 묘가 그 아래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묘역은 조선 후기 사대부 묘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봉분(封墳) 앞에 묘비(墓碑),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유창환의 묘비에는 그의 생애와 공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의 활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묘역 주변에는 석상(石像)이나 문인석(文人石)과 같은 장식적인 요소가 간소하게 갖추어져 있거나 생략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당시 사대부 묘제의 실용성과 검소함을 반영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 묘소는 역사적 인물의 묘소이자 조선 후기 묘제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