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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회

권업회(勸業會)는 1911년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한민족 항일독립운동 단체이다. 명칭은 '실업(산업)을 장려한다'는 뜻으로, 일제와 러시아 당국의 탄압과 감시를 피하기 위해 표면상 경제 활동 단체로 위장한 것이며, 실제 목적은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구국 운동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연해주에는 1864년 이래 약 20만 명에 가까운 한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1911년 5월 20일, 이종호·김익용·강택희·엄인섭·최재형·홍범도 등이 주축이 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초대 회장은 최재형, 부회장은 홍범도가 선임되었다. 같은 해 12월 총회에서 회칙을 개정하여 의사부와 집행부로 조직을 나누었고, 의장에 이상설, 부의장에 이종호가 선임되었다.

권업회는 러시아 극동총독의 허가를 받아 대외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연해주 주요 지역에 지회와 분사무소를 두었다. 회원 수는 1913년 10월 약 2,600명에서 1914년에는 8,579명으로 증가하였다. 기관지로 《권업신문》을 발행하여 민족정신 고양과 교민 단결에 힘썼으며,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학교인 계동학교를 한민학교로 확대하여 민족주의 교육의 중추로 삼았다.

군사 활동으로는 1913년부터 동북만 지역에 독립운동사상 최초의 사관학교인 대전학교를 설립·운영하여 광복군 간부를 양성하였고, 러시아 당국과 교섭하여 광복군 훈련을 위한 군영지 확보를 추진하였다. 또한 양군호·해도호 등 비밀결사를 통해 광복군 양성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이상설·이동휘·이동녕 등 권업회 핵심 회원들이 주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를 건립하였으나, 같은 해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러시아가 전시체제에 돌입하고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1914년 8월 7일 권업회는 강제 해산되었고 《권업신문》도 정간되었다. 권업회의 전통은 1917년 결성된 전로한족중앙회(全露韓族中央會)로 이어졌으며, 이후 1919년 대한국민의회의 토대가 되었고, 같은 해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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