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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

궁중무(宮中舞)는 한국의 궁중 연향(進宴)과 의식에서 연행되던 춤으로, '정재(呈才)'라고도 불린다. 정재는 '재예(才藝)를 바친다'는 뜻으로,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종합 예술 공연물을 가리킨다. 궁중무는 군주 국가 체제가 성립되면서 국가 기관에 예속되어 보호받으며 전승된 춤으로, 왕실의 경사, 궁중 향연, 외국 국빈을 위한 연회 등에서 연행되었고, 일부는 지방 관아에까지 전파되었다.

형식과 분류

궁중무는 크게 향악정재(鄕樂呈才)와 당악정재(唐樂呈才)로 구분된다. 당악정재는 죽간자(竹竿子) 두 명의 인도 아래 무용수가 등·퇴장하고, 당악곡으로 반주하며 한문 창사(唱詞)를 노래하는 형식이다. 향악정재는 죽간자 없이 무용수가 곧바로 등·퇴장하고, 향악곡으로 반주하며 우리말 창사를 노래한다. 고려 시대에는 이 구분이 뚜렷했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졌다.

역사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궁중무의 종류는 53종으로, 시대별로 신라 시대 4종, 고려 시대 13종, 조선 시대 36종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문종 27년(1073)에 송(宋)에서 당악정재가 처음 전래된 이후, 헌선도(獻仙桃)·수연장(壽延長)·오양선(五羊仙)·포구락(抛毬樂)·연화대(蓮花臺) 등의 당악정재가 조선으로 전승되었다. 향악정재로는 아박(牙拍)·무고(舞鼓)·무애(舞㝵)·처용무(處容舞) 등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전승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하성명(賀聖明)·성택(聖澤)·육화대(六花隊) 등의 당악정재가 새로 창작되었고, 보태평(保太平)·정대업(定大業)·봉래의(鳳來儀)·향발(響鈸)·학무(鶴舞) 등의 향악정재가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첨수무(尖袖舞)·검기무(劒器舞)·선유락(船遊樂)·관동무(關東舞)·사자무(獅子舞)·항장무(項莊舞) 등이 새로운 종목으로 추가되었다.

1828년(순조 28)과 1829년(순조 29)의 왕실 잔치를 계기로 효명세자(孝明世子)의 주도 아래 많은 정재가 창제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망선문(望仙門)·경풍도(慶豊圖)·만수무(萬壽舞)·춘앵전(春鶯囀)·박접무(撲蝶舞)·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춘앵전은 화사한 봄날 버들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모습을 표현한 독무로, 궁중무용의 정수로 손꼽힌다.

전승과 현재

인조반정(1623) 이후 장악원 소속 여기가 폐지되면서 궁중연향 때마다 지방에서 여기를 뽑아 올리는 선상기(選上妓)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궁중정재와 지방 관아의 정재가 서로 교류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 이후 조선 말기까지 전승된 정재는 50여 종목에 이른다. 1950년대부터 궁중 정재의 재현 작업이 이루어져 대부분의 정재가 현재까지 재현되었으며, 국립국악원 등을 통해 전통으로서 계승되고 있다.

궁중무는 민간 대중과는 거리가 먼 채 궁중과 지방 관아에서만 연행되었던 점에서 민속무용과 대비되는 특징을 지닌다. '궁중무용'이라는 표현보다는 '궁중무'라는 용어가 전통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무용'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이후에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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