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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척탄병

국민척탄병(Volksgrenadier)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4년 9월, 나치 독일이 전쟁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긴급 편성한 보병 병력 및 그 사단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독일어 'Volksgrenadier'에서 유래하였으며, 'Volk'(국민, 인민)과 'Grenadier'(척탄병)의 합성어이다.

배경

1944년 6월부터 8월까지 서부 전선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동부 전선의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해 독일군은 양대 전선에서 약 100만 명에 달하는 병력 손실을 입었고, 60개 이상의 사단이 섬멸되거나 격파되었다. 이에 나치 독일은 손실된 사단을 대체하기 위해 약 50개의 신규 보병사단, 즉 국민척탄병 사단을 편성하는 응급 조치를 시행하였다. 이 중 26개 사단은 신규 편성이었고, 나머지는 기존 사단을 잔존 인원을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었다.

편성 및 구성

국민척탄병 사단은 인력 자원이 극도로 고갈된 상황에서 편성되었기 때문에, 예비역, 패잔병, 부상병, 비전투 병과 인원, 해군 및 공군의 잉여 인력, 징집 대상이 아니었던 중장년 남성, 10대 후반의 소년 등 전투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구성되었다. 편제상으로는 기존 독일군 보병사단이 3개 연대 9개 보병대대 체제였던 것에 비해, 국민척탄병 사단은 3개 연대 6개 보병대대로 감편되었다.

국민척탄병은 국민돌격대(Volkssturm)와는 다른 조직이다. 국민척탄병은 정규 육군 부대였으며 군복과 무기가 정상적으로 지급된 반면, 국민돌격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최후의 민병대 성격이 강했다.

장비 및 전투 양상

국민척탄병 사단은 기존 독일군 교리와 달리 자동화기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MP40 기관단총, StG44 돌격소총, 판처파우스트 및 판처슈렉 대전차 화기 등이 지급되었다. 이는 비숙련병에게 자동화기가 단발 화기보다 다루기 쉽다는 점과, 근거리 교전을 염두에 둔 교리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다만 보급 상황이 열악하여 사단에 따라 장비 수준의 편차가 컸으며, 슈탈헬름(강철모)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활약 및 결과

국민척탄병 사단은 1944년 12월 아르덴 대공세를 비롯하여 서부 전선, 지크프리트 선, 동부 전선, 이탈리아 전선, 독일 본토 방어전 등에 투입되었다. 부대별로 구성원의 전투 경험 차이가 커서, 숙련병이 많은 부대는 비교적 높은 전투력을 보였으나, 미숙련병 위주의 부대는 사기 저하, 탈영, 아군 오사 등의 문제를 겪었다. 결국 이들 병력마저 대부분 소모된 이후, 나치 독일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민돌격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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