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부(영국, 영어: National Government) 는 영국의 정치에서 일부 또는 전체 주요 정당들이 참여하여 구성한 연립 정부를 이르는 용어이다. 역사적으로는 특히 1931년부터 1940년까지 집권했던 램지 맥도널드(Ramsay MacDonald),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내각을 지칭한다.
개념의 성립
'국민정부'라는 용어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H. H. 애스퀴스(H. H. Asquith)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의 전당적 연립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선택된 명칭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의 연립 정부가 오늘날에는 주로 '연립 정부'로 불리는 반면, 1931년 이후의 정부에는 '국민정부'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전당적 정부도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국민정부로 불렸다.
1931년의 형성 배경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촉발된 세계적 대공황은 영국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당시 노동당 정부는 금본위제 유지, 예산 균형, 실업 구호라는 서로 모순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1931년 상황이 악화되면서 독립적인 메이 보고서(May Report)는 예산 불균형을 확인했고, 이는 파운드화에 대한 신뢰 위기를 촉발했다. 노동당 내각은 실업 수당 삭감 문제를 두고 11대 9로 분열되었고, 1931년 8월 24일 정부는 사임하였다.
이후 조지 5세 국왕과 보수당·자유당 지도자들의 요청으로 맥도널드는 총리직을 유지하면서 노동당, 보수당, 자유당 인사들을 포함한 국민정부를 구성하였다. 새 내각에는 맥도널드를 따른 네 명의 노동당원(이후 '국민노동당'으로 분리), 네 명의 보수당원, 두 명의 자유당원이 포함되었다. 노동당 본당은 맥도널드의 태도를 배신으로 간주하고 그를 당에서 제명하였으며, 국민정부에 반대하였다.
전개 과정
1931년 10월 총선에서 국민정부 연립 세력(보수당, 국민노동당, 자유당, 자유국민당 등)은 총 556석을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큰 압승이었으며, 노동당은 52석의 소수파로 전락하였다.
국민정부는 금본위제 이탈, 관세 도입(오타와 협정), 인도 자치 법안 등의 주요 정책을 추진하였다. 내각 연대 책임 원칙의 중단 등 독특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935년 6월 맥도널드가 건강 악화로 총리직에서 물러나자 볼드윈이 이어받았고,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는 체임벌린이 총리가 되었다.
국민정부 시기는 유화 정책(appeasement)으로 대표되는 대독 외교 정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체임벌린은 1938년 뮌헨 협정을 주도했으며, 이 정책은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종결
1940년 5월 노르웨이 전역의 실패에 대한 의회의 비판(노르웨이 논쟁) 이후 체임벌린이 사임하면서 국민정부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전당적 연립 정부가 들어섰다.
의의
국민정부는 대공황과 세계 대전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이 취한 초당적 협력 체제의 사례로서, 영국 의회 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