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당(國巫堂) — 고려·조선 시대에, 국가와 궁중에서 의뢰하는 굿(무속 의례)을 담당하던 무당을 가리키는 역사·민속학 용어이다. 한자어로는 '나라 국(國)', '무당 무(巫)', '집 당(堂)'을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동의어로 국무(國巫) 가 등재되어 있으며, 민간에서는 '나라무당' 또는 '나라만신'이라고도 불렸다.
개념 및 역사
- 고려시대 명종 때 설치된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 이나 조선시대의 성수청(星宿廳), 활인서(活人署) 등의 국가 기관에 국무당이 소속되어 있었다.
- 명산대천에서 왕실의 복을 비는 별기은제(別祈恩祭), 기우제(祈雨祭), 왕비나 태후의 무제(巫祭)를 집전하고 궁중의 병굿도 담당하였다.
- 국무당 내에는 우두머리인 도무(都巫) 와 이를 돕는 종무(從巫) 가 있었으며, 잡역 면제 등의 특혜를 받았다.
역사적 전개
- 고려 인종대부터 유학자들이 무풍배척(巫風排斥) 정책을 시행하면서 존폐 논란이 시작되었다.
-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무속을 음사(陰祀)로 규정하고 탄압하였으며, 무당을 팔천(八賤)의 하나로 천시하였다.
- 그러나 뿌리깊은 무속 신앙의 전통으로 인해 궁중호무(宮中護巫)는 음성적으로 계속 이어졌으며, 특히 조선 말기 명성황후(민비)에 의해 크게 성행하였다.
- 1426년(세종 8) 사간원에서 성수청의 국무당을 없앨 것을 청한 기록이 《세종실록》에 남아 있다.
의의
국무당은 국가의 정치 이념(유교)과 기층 민간 신앙(무속)이 충돌하는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존속한 한국 무속 신앙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