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회 (독일 제국)(독일어: Reichstag 라이히스타크[*])는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했던 독일 제국의 입법부였다. 제국의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로,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황제와 제국수상(총리)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현대적인 의회 민주주의보다는 제한적인 입헌군주제의 틀 안에서 기능했다.
명칭 및 유래 독일어 'Reichstag'는 '제국(Reich)'과 '회의(Tag)'의 합성어로, 신성 로마 제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일의 전통적인 회의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는 단순히 '의회'를 의미하는 'Parlament'와는 구별되는, 역사적 맥락을 지닌 표현이었다.
역사 국가의회는 1867년 북독일 연방의 의회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되면서 제국의 의회로 계승되었다. 초기에는 베를린 시내의 여러 임시 건물에서 회의를 개최하다가, 1894년 현재의 국회의사당(Reichstagsgebäude)이 완공되면서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모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18년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그 후신으로 바이마르 국회(Weimarer Nationalversammlung)와 이후의 바이마르 공화국 국회(Reichstag der Weimarer Republik)가 등장하게 된다.
구성 및 선거 국가의회 의원(Abgeordnete)은 만 25세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주어지는 보통선거권에 따라 선출되었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선거 제도 중 하나였으나, 선거구는 1871년 인구 기준으로 고정되어 산업화로 인한 인구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도시 지역의 인구 과소 대표 현상이 발생했고, 특히 사회민주당(SPD) 지지 기반인 노동자 계층의 의석 수가 실제 지지율에 비해 적게 나타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의원 수는 초기에 397명이었으며, 이후 인구 변화에 따라 소폭의 조정을 거쳤다.
권한과 한계 국가의회는 주로 입법 권한과 예산 심의 및 승인 권한을 가졌다. 법률을 제정하고, 제국 정부의 예산을 승인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그러나 법안 발의권은 제국수상과 연방참의원(Bundesrat, 각 주 대표들로 구성된 상원 격의 기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고, 제국 정부의 구성이나 해산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은 없었다. 제국수상은 황제에 의해 임명되고 황제에게만 책임을 지는 구조였으므로, 국가의회는 정부를 견제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군사 문제와 외교 정책 등 핵심적인 국정 운영은 대부분 황제와 군부가 주도했으며, 의회는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했다.
의의 제한적인 권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회는 제국 내 다양한 정치 세력, 특히 사회민주당(SPD)과 같은 좌파 정당들이 합법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장이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임 시기에는 의회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의회는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요구를 강하게 표출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의회의 권한 강화 시도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국가의회는 독일 제정 시대의 정치적 발전과 시민 사회의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관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