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춘(具滋春, 1932년 5월 11일~1996년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행정 관료, 정치인이다. 본관은 능성 구씨이며, 호는 취산(翠山)이다.
출생 및 초기 생애 1932년 5월 11일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농림중학교를 거쳐 1950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나, 같은 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교사로 부임하지 못하고 육군에 지원하였다.
군인 경력 1951년 육군 갑종장교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1954년 미국 육군포병학교를 졸업하였고, 1961년 육군 중령으로 제6군단 포병 제993대대장으로 재직 중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육군본부 점령에 기여하였으며, 이로 인해 '혁명 주체세력'으로 인정받았다. 1963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관료 경력 예편 후 경찰 조직에 몸담아 충청남도 경찰국장, 전라남도 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 정보과장, 서울특별시 경찰국장, 경찰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1968년 제15대 제주도지사, 1969년 제3대 수산청장, 1971년 제13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1974년 9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임하였다. 서울특별시장 재임 기간 동안 원래 영등포~을지로~삼성동 구간으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하여 계획하였으며, 이 노선은 이후 강남 지역 개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종로·을지로·청계천로의 도로 확장,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금화터널 건설, 한양도성 일부 복원 등을 추진하였다. 추진력이 강한 성격으로 '황야의 무법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8년 12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제38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0·26 사태와 12·12 사태 등 격변기를 겪으며 장관직을 수행하다 사임하였다.
정치 규제 및 이후 활동 전두환 정권 출범 이후 정치 규제를 받아 1984년까지 야인 생활을 하였으며, 이 시기 LG그룹의 구자경 회장(42촌)의 배려로 럭키금성그룹 경영고문을 지냈다.
정치인 경력 1987년 김종필과 함께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여 부총재를 맡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달성군·고령군 선거구에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초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1995년 김종필과 함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여 부총재를 지냈다.
사망 1996년 2월 8일 의정보고회 참석을 위해 이동하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대구 동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2월 10일 심장 수술을 받던 중 향년 63세로 사망하였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학력 대구사범학교 졸업, 국학대학교(현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연수 과정을 수료하였다.
상훈 은성충무무공훈장, 금성화랑무공훈장, 청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중화민국 경성대수장, 가봉국 1등수교훈장 등을 수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