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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메성

구루메성(일본어: 久留米城, Kurume-jō)은 일본 후쿠오카현 구루메시 사사야마초에 있었던 일본식 성곽이다. 지쿠고국 미이군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현재는 성터만 남아 있으며 후쿠오카현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와 구조

구루메성은 구루메 시가지의 북서쪽, 지쿠고강이 서쪽에서 남쪽으로 크게 굽어져 호오만강(宝満川)과 합류하는 지점의 좌안 언덕 위에 축조된 평산성(平山城)이다. 에도 시대에는 구루메번의 번청이 설치되었고, 셋쓰 아리마씨(摂津有馬氏)의 거성이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건물이 철거되었으며, 현재 혼마루 자리에는 아리마 기념관과 사사야마 신사가 세워져 있다. 니노마루와 산노마루 지역은 브리지스톤 구루메 공장 부지와 시가지로 전용되었다.

역사

무로마치 시대 후기의 에이쇼 연간(1504년~1521년)에 이 지역의 토호가 시노하라성(篠原城)이라 불린 요새를 쌓은 것이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덴분 연간(1532년~1555년)에는 미이군의 관리가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이 지역은 분고국의 오토모 소린과 히젠국의 류조지 다카노부가 패권을 다투던 곳으로, 성주가 자주 교체되었다.

1587년(덴쇼 1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를 평정하면서, 오토모 소린의 사위인 모리 히데카네(毛利秀包)가 13만 석으로 지쿠고 구루메에 봉해졌다. 그는 해자를 파고 돌담을 쌓고 천수각을 두는 등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양식의 성곽으로 대규모 개축 공사를 진행했다. 히데카네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했기 때문에 성주가 교체되었다.

에도 시대에 들어 지쿠고국에는 다나카 요시마사가 32만 5천 석에 봉해져 야나가와성을 본성으로 삼았고, 구루메성은 야나가와성의 지성으로 다나카 요시노부가 성주를 맡았다. 1620년(겐나 6년) 다나카 요시마사의 아들 다다마사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다나카씨는 교체되었다.

1621년(겐나 7년) 단바국 후쿠치야마 번주였던 아리마 도요우지가 21만 석으로 구루메성의 성주가 되었다.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구루메는 서국의 대번인 아리마씨의 거성이 되었다. 도요우지는 다나카씨가 중단한 성 공사를 재개했고, 1631년 지쿠젠국 후쿠오카번주 구로다 나가마사의 지도로 지쿠젠 해자를 완성했다. 1649년(게이안 2년)부터 4년에 걸쳐 외곽부를 쌓아 성시를 정비했으며, 1691년(겐로쿠 4년) 제4대 번주 요리모토 대에 이르러 성곽이 완성되었다.

폐성 이후

1871년(메이지 4년) 폐번치현에 따라 폐성이 되었고, 1874년 폐성령에 의해 폐성 처분되었다. 처분된 건물은 히타의 읍민이 낙찰받아 대부분 해체되었다. 1877년 혼마루 어전 자리에 사사야마 신사가 건조되었다. 1974년에는 당시 구루메 시장 지카미 도시유키를 중심으로 성곽과 망루의 재건이 계획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1983년 3월 19일 성터는 후쿠오카현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상태

현재 구루메성은 돌담과 해자 등 일부 유구만 남아 있다. 2017년에는 일본성곽협회가 선정한 '속 일본 100대 명성'(続日本100名城)에 포함되었다. 성터 내에는 아리마 기념관과 사사야마 신사가 있으며, 역대 영주의 무기와 공예품 등이 보존·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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