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장씨(求禮張氏)는 한국의 성씨로, 본관은 전라남도 구례군이다. 봉성 장씨(鳳城張氏)라고도 불린다. 시조는 장악(張岳)으로, 인동 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21세손에 해당한다. 장악은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나이 70세에 입조할 때마다 고향인 봉성(鳳城, 현 전라남도 구례군)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왕이 감동하여 봉성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하고 봉성군(鳳城君)에 봉하였다고 전해진다. 후손들은 이를 기려 구례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일부에서는 봉성 장씨로도 불린다. 장악의 자(字)는 악(嶽), 호는 이재(爾齋), 시호는 양간(襄簡)이다.
구례 장씨는 역사적으로 무관과 충신을 다수 배출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중기의 무신 장필무(張弼武, 1510~1574)가 있다. 그는 만포 첨사(滿浦僉使)와 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청백리에 뽑혀 사후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장필무의 큰아들 장의현(張義賢)은 무신으로 1583년 부령 부사(富寧府使)로 니탕개(尼湯介)의 침입을 막아 명성을 떨쳤고, 임진왜란 때는 장흥 부사로 활약하였다. 전란 후 무주 당산(堂山, 현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정착하여 오류정(五柳亭)이라 이름하고 살았으며, 이로 인해 무주군에 정착한 입향조(入鄕祖)로 여겨진다. 장필무의 둘째 아들 장지현(張智賢, 1536~1593)은 임진왜란 당시 추풍령(秋風嶺)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장으로 이름이 높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 구례 장씨는 15,571명, 봉성 장씨는 1,670명으로 총 17,241명이다. 주요 집성촌으로는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및 문척면 일원,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및 무주읍 일원,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일원, 충청남도 금산군 일원 등이 있다. 관련 문화유적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죽계 서원(竹溪書院)이 있으며, 이 서원은 1713년(숙종 39)에 건립되어 장필무, 장의현, 장지현 등을 배향하고 있다. 또한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는 장지현을 추모하는 충신각(忠臣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