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영릉 석물(舊 英陵 石物)은 조선 제4대 국왕인 세종(世宗)과 그의 비(妃)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의 무덤인 영릉(英陵)이 처음 조성되었을 때 함께 만들어진 석물(石物)을 통칭한다. 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 경내에 보존·전시되어 있으며, 1980년 6월 11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 3월 1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구 영릉은 원래 1446년(세종 28년) 소헌왕후가 승하하면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13번지 일대(당시 태종의 헌릉 서쪽 산등성이)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1450년(세종 32년) 세종이 합장되고, 1452년(문종 2년) 세종대왕신도비가 건립되면서 완공되었다. 그러나 1469년(예종 원년) 풍수지리상 길지(吉地)가 아니라는 논의로 인해 영릉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현재의 영릉 위치)로 천장(遷葬)되었다. 이때 석물들은 운반상의 어려움으로 원래 능터에 땅에 묻혀 있었다가, 1973~1974년에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발굴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구 영릉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치장제도(治葬制度)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능이자 조선 초기 왕릉을 대표하는 대규모 능이었다. 동분이실(同墳異室)의 석실(石室)을 채택하였으며, 문관석인상과 무관석인상을 각각 2기씩, 석양·석마·석호를 각각 4기씩 갖추었다. 석실 내부에는 고구려 계통 고분 양식의 사신도(四神圖)와 일월성진도(日月星辰圖)가 그려졌고, 봉분은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병풍석으로 둘러져 있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존된 지정 석물은 총 13기(基)로, 세종대왕신도비(世宗大王神道碑, 42-1호), 문관석인상 2기(42-2호, 42-3호), 무관석인상 2기(42-4호, 42-5호), 석양상 2기(42-6호, 42-7호), 석마상 2기(42-8호, 42-9호), 장명등(42-10호), 망주석(42-11호), 혼유석(42-12호), 고석(42-13호)으로 구성된다. 다만 조성 당시의 모든 석물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석양상과 석마상은 각각 4기에서 2기로 줄었고, 망주석은 2기 중 1기만 일부 남아 있다. 장명등은 개석(蓋石)이 망실되었으며, 세종대왕신도비는 이수(螭首)와 비신(碑身)만 남고 귀부(龜趺)가 없어진 상태로 발굴되었다. 병풍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석호상 2기는 발굴 후 현재의 영릉(여주)으로 이전되었고, 나머지 2기는 도굴되었다가 회수되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석물들은 조선 초기 왕릉의 규모와 석물 배치 방식, 제작 수법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당시의 양전척(量田尺)과 주척(周尺) 등을 환산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나아가 세종 시대의 국력과 문화 발달 정도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