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1대 교황(재위: 1958년 10월 28일 ~ 1963년 6월 3일). 세속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이며, 2014년 4월 27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의 축일은 10월 11일이다.
생애 초기와 사제 서품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인근의 소토 일 몬테(Sotto il Monte)에서 가난한 소작농 가정의 1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2년 베르가모 소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01년 군에 징집되어 위생병으로 복무한 후 1904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베르가모 교구장 라디니 테데스키 주교의 비서로 임명되어 1914년까지 근무하였으며, 이 시기에 노동자들의 고충을 접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탈리아 육군에서 군종 신부로 활동하였다.
교황청 외교관 시절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아레오폴리스의 명의 대주교로 서임되고 주불가리아 교황청 순시자로 파견되었다. 1935년에는 터키와 그리스의 교황 사절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그는 이스탄불에서 활동하며 수천 명의 유대인 난민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44년 주프랑스 교황 대사로 임명되었으며,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한 혐의가 있는 주교들을 조사 처리하는 한편 독일군 포로들의 인도적 처우를 촉구하였다.
추기경과 교황 선출
1953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958년 10월 28일, 77세의 고령으로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추기경단은 그를 '과도기적 교황' 또는 '징검다리 교황'으로 여겼으나, 그는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교회 역사에 큰 획을 긋는 활동을 펼쳤다. 교황명으로 '요한'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서방 교회 대분열 시기의 대립교황 요한 23세 이후 5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선택된 이름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
1959년 1월 25일,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선언하였다.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 이후 약 90년 만에 열린 세계 공의회였다. 1962년 10월 11일 개막된 이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의 전례 개혁, 교회 일치 운동, 타종교와의 대화, 평신도 사도직 등 현대 교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 제1회기만을 주재하고 1963년 6월 3일 위암으로 선종하였으며, 공의회는 후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1965년까지 계속되었다.
주요 업적과 평가
교황 요한 23세는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착한 교황(Il Papa Buono)'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교황으로서 처음으로 로마 시내의 병원과 교도소를 방문하는 등 권위주의적인 교황상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63년 4월 11일에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보낸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반포하여 세계 평화와 인권, 핵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중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962년 교황으로는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시복과 시성
2000년 9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고, 2014년 4월 27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합동 시성식에서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전 내 성 예로니모 제대 아래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