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19세(라틴어: Ioannes PP. XIX,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XIX)는 가톨릭교회의 제144대 교황으로, 재위 기간은 1024년 4월/5월부터 1032년 선종 때까지이다. 본명은 로마누스(Romanus)이다. 그의 생몰 연도에 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략 975년경 로마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1032년에 선종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문과 교황 선출 배경
요한 19세는 로마 태생으로, 당시 로마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투스쿨룸 백작 가문 출신이다. 그는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8세의 동생이었다. 본래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로서 집정관(consul)과 원로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형인 베네딕토 8세로부터 "모든 로마인들의 집정관, 원로원, 장군"(Consul, dux et senator omnium Romanorum)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형인 베네딕토 8세가 사망한 후, 로마누스는 단 하루 만에 모든 성직품(성직자로 서품되는 일련의 단계)을 받고 요한 19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다. 당시 그는 성직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으며, 일부 사료에서는 그가 매수와 뇌물을 통해 교황직을 얻었다는 비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재위 활동
요한 19세의 재위 기간 동안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1024년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2세가 사망하자, 요한 19세는 콘라트 2세와 그 아내를 로마로 초청하여 1027년 부활절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그들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황후로 대관하였다.
- 1025년 그는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1세를 축복하고 그를 폴란드의 왕으로 봉하였다.
- 1027년 라테라노 시노드를 소집하여 아퀼레이아 총대주교좌를 설정하고 그라도 총대주교를 주교로 격하하는 등 교회 행정 구조에 관한 결정을 내렸으나, 1029년 그 결정을 철회하고 그라도 주교를 다시 총대주교로 복위시켰다.
비잔틴 교회와의 관계
요한 19세의 재위 시기에는 동방 정교회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에우스타시오스의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이후 1054년 동서 교회 분열로 이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요한 19세는 처음에 거액의 뇌물을 받고 총대주교에게 "세계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것에 동의했으나, 이 소식이 알려져 교회 내 반발이 일자 즉각 동의를 철회하였다고 한다.
후원 활동과 평가
요한 19세는 교회 음악가이자 수도자였던 귀도 다레초의 후원자로 유명하다. 귀도 다레초는 현대적 기보법(오선보)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요한 19세는 그를 로마로 초청하여 그가 발명한 음악 기보법을 설명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요한 19세의 선종 원인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명확하지 않다. 일부 전승에서는 분노한 농민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없다. 선종의 정확한 날짜 역시 사료마다 차이가 있어 1032년 10월 또는 12월로 전해진다.
후임자와 교황 명칭에 관하여
요한 19세가 선종한 후 그의 조카인 베네딕토 9세가 후임 교황이 되었다. 한편, 요한 19세 이후 요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다음 교황은 요한 20세가 아닌 요한 21세(재위 1276–1277)로 지칭되었다. 이는 교황 요한 15세와 요한 17세의 명칭 번호 매김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혼란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