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자(交子, Jiāozǐ)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시(成都市)에서 10세기경 처음 사용된 지폐로, 북송(北宋) 시기에 전국적으로 유통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공식 지폐로 알려져 있다.
배경
송 왕조 이전 당(唐) 왕조 시기에 이미 언방(堰坊)이라는 기관이 존재하여 금전이나 포백 등을 맡아 두고 그 증명서로 어음을 발행하였다. 이 어음은 다른 지역에서 현물과 같은 가치를 지닌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널리 유통되었다. 오대 십국 시대(五代十國時代)를 거치며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동전의 수요가 높아졌으나, 쓰촨 지방은 동전을 만들 구리 산출이 적어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웠다. 당시 쓰촨을 지배하던 전촉(前蜀) 및 후촉(後蜀) 정권은 산출량이 많은 철을 이용해 철전(鐵錢)을 발행하였다. 송 왕조 수립 후 송 태조(宋太祖)는 쓰촨의 금은과 동전을 중앙으로 운송하게 하고 철전 사용을 강제하였다. 그러나 철전은 동전에 비해 무거워(철전 1,000문이 약 25근으로 수레에 실어야 할 정도였으며, 가치는 동전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거래에 큰 불편이 따랐다.
발행과 발전
이에 청두에서는 16곳의 교자포(交子鋪)가 조합을 이루어, 철전을 맡기고 그 증서로 교자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16개 교자포는 송 정부의 허가를 받아 쓰촨에서 교자 발행을 독점하였고, 신용도가 높은 교자는 무거운 철전보다 더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이후 교자포의 사업 실패와 체불 사태가 발생하자, 송 인종(仁宗) 천성(天聖) 원년(1023년), 송 정부는 교자 발행을 관영(官營)으로 전환하고 민간 발행을 금지하였다. 정부는 본전(本錢, 현금 교환용 준비금)으로 36만 민(緡)을 비축하고 발행 한도액을 125만여 민으로 설정하여 교자를 유통시켰다. 이로써 교자는 단순한 어음이 아닌 국가가 보증하는 지폐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 교자에는 계(界)라 불리는 유통 기한이 설정되어, 2년 또는 3년 이내에 동전이나 새로운 교자로 교환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하였다.
남발과 몰락
교자의 편리성으로 수요가 증가하였고, 송 왕조는 북방의 요(遼) 및 서하(西夏)와의 군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교자 발행을 확대하였다. 신종(神宗) 희령(熙寧) 5년(1072년)에 발행액이 배로 늘었고, 이후 계속 증가하여 휘종(徽宗) 숭녕(崇寧) 5년(1106년)에는 2,600만 민으로 당초의 20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교자의 남발과 함께 현금 교환이 중단되면서 가치는 급락하여, 액면가 1관(貫)짜리 교자가 수십 문(文)밖에 거래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교자의 유통은 중단되었고, 송 정부는 대관(大觀) 원년(1107년)에 교자를 대신해 전인(錢引)을 발행하였다. 이후 남송(南宋) 왕조에서는 전인 또한 신용도가 떨어져 회자(會子)가 대신 발행되었다.
의의
교자는 세계 화폐사에서 최초의 국가 발행 지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후 원(元)나라의 교초(交鈔) 등 동아시아 지폐 발행의 선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