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교육에 관한 칙어(敎育에關한勅語, 일본어: 教育ニ関スル勅語)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제국에서 메이지 정부가 공표한 칙어(勅語)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칙어'(教育勅語)로 줄여 부른다. 정식 명칭은 '교육에 관한 칙어'이며, 일본어로는 '교이쿠니칸스루초쿠고'(教育ニ関スル勅語)로 표기된다. 1890년 10월 31일에 반포되었고, 1948년 6월 19일에 그 실효가 확인·폐지되었다.
배경과 성격
교육에 관한 칙어는 1890년 10월 30일,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발표된 칙어이다. 당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내각총리대신과 요시카와 아키마사(芳川顯正) 문부대신에게 내려졌다. 그 취지는 일본 제국 신민의 수신(修身)과 도덕 교육의 기본 규범을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칙어는 일본 천황제 국가체제에 입각한 군국주의 교육 방침으로, 국민 교육의 정신적 규범으로 기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는 각각 조선교육령과 대만교육령을 통해 교육 전반의 규범을 정하였다.
주요 내용
교육칙어는 메이지 천황이 국민에게 직접 분부하는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역대 천황이 국가와 도덕을 확립시켰다고 밝히면서, 국민의 충성심과 효도심이 '국체의 정화'(國體의 精華)이자 '교육의 연원'(敎育의 淵源)임을 규정하였다.
둘째, 국민이 지켜야 할 12가지 덕목을 명시하였다. 여기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 부부 사이의 조화, 형제 간의 우애, 붕우 간의 신의, 공검(恭儉)한 자세, 박애 정신, 학문의 수련, 지능의 계발, 덕기(德器)의 성취, 공익의 확대, 국헌을 중시하고 국법을 준수할 것, 유사시 의용(義勇)으로 봉공(奉公)할 것 등이 포함된다.
셋째, 이상의 내용이 역대 천황의 유지(遺旨)이므로 국민뿐만 아니라 메이지 천황 자신도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끝을 맺는다.
시행 방식
교육칙어의 사본은 일본 제국 및 식민지 각 학교의 봉안전(奉安殿)에 어진영(御眞影, 천황의 사진)과 함께 보관되어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새해 첫날(1월 1일), 기원절(2월 11일), 천장절(天長節, 천황 생일), 메이지 천황의 생일(11월 3일) 등 4대 명절에는 각 학교에서 의식을 치렀으며, 전교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교장이 교육칙어를 봉독(奉讀)하였다.
폐지 과정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이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 최고사령부(GHQ)는 1946년 10월 '칙어 및 조서 등의 취급에 대해서'라는 문부사무차관 통첩을 통해 교육칙어를 교육의 근본 규범으로 삼는 것을 금지하였다. 1947년에는 교육기본법이 공포·시행되면서 학교 교육에서 교육칙어가 배제되었다.
1948년 6월 19일, 일본 중의원은 '교육칙어 등의 배제에 관한 결의'를, 참의원은 '교육칙어 등의 실효 확인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면서 교육칙어가 학교 교육에서 효력 상실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역사적 의의
교육에 관한 칙어는 약 55년간(1890년~1948년) 일본의 교육을 주도한 핵심 문서이다. 천황의 신격화와 유교적 가족 도덕을 강조하며 군신(君臣)·부자(父子) 등의 상하 관계를 중시한 일본 국민의 정신적 규범이었다. 일본 제국 시기 교육의 방향을 결정한 사료(史料)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문서이나, 전쟁 시기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을 이끈 상징적 문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