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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동 건물지

교산동 건물지(校山洞 建物址)는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78-3번지 일원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이다. 1996년 세종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하남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기전문화재연구원(현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총 4차에 걸친 시굴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하남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입지와 배치

이 유적은 검단산의 한 줄기인 객산 기슭에 북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덕풍천이 흐른다. 발굴 결과 동서 길이 약 40m, 남북 길이 약 45m의 마당을 중심으로 동쪽·서쪽·남쪽에 대형 건물지가 평면 'ㄷ'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건물지 외곽으로는 장방형의 토루(土壘)가 둘러싸고 있으며, 담장지, 연못지, 할석유구, 가마터(요지) 등도 함께 발굴되었다. 총 15동의 건물지와 6기의 담장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6동의 건물지는 주칸거리를 달리하며 두 차례에 걸쳐 중첩된 양상을 보인다.

변천 과정

학술 연구에 따르면 교산동 건물지의 변천은 크게 3기로 구분된다.

  • 제1기: 서쪽과 동쪽 건물지 및 건물지를 둘러싼 토루가 함께 조영되었다. '성달(城達)'과 '애선(哀宣)' 명문 기와, 해무리굽 청자 등이 출토되어 남북국시대(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건물지는 한산주(한주)의 관영 건물지이자 평지성의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 제2기: 'ㄷ'자 형태의 건물 배치가 완성되었다. '광주객사(廣州客舍)' 및 '관(官)' 명문 기와, 분청사기, 조선 관요에서 생산된 백자 등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광주객사(客舍)로 운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제3기: 서쪽·동쪽·남쪽 건물지가 조영되었고, 담장지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일부 보수가 이루어졌다. '별(別)'자가 시문된 백자와 청해파문 바탕의 '광(廣)'·'관(官)'명 인장와가 포함되어 있어, 광주관아가 남한산성으로 이전되기 전인 17세기 전반까지 관영 건물이 존속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출토 유물

유적에서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주요 출토품으로는 귀면와, 막새, 평기와, 주름무늬병편, 파상문토기편, 도기, 흑유도기, 청자, 백자 등이 있다. 백자 가운데에는 '별(別)', '천(天)', '천(川)', '은(銀)', '제(祭)' 등의 글자가 시문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명문 기와로 '성달백사(城達伯士)', '애선백사(哀宣伯士)', '광주객사(廣州客舍)'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역사적 가치

교산동 건물지의 역사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조선시대 광주 객사지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둘째, 남북국시대 한산주(한주)의 관영 건물지이자 평지성으로서, 특히 건물지를 둘러싼 장방형 토루는 읍성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셋째, 후삼국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인 성달과 애선의 이름이 시문된 명문 기와가 교산동 건물지와 광주향교 등 교산동·춘궁동 일원에서 출토되고 있어, 이들의 영향력과 당시 정치적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넷째, 주변 유적(천왕사지, 동사지, 광주향교, 이성산성 등)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현황과 과제

발굴조사 결과는 종합보고서를 포함하여 총 4권으로 간행되었다. 현재 유적은 노출 보존 상태로 남아 있으며, 학계에서는 추가 정밀조사와 탐방객을 위한 기본 시설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하남 교산 신도시(3기 신도시) 개발이 추진되면서 교산동 일대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고려시대 건물지와 송대 화폐 등 새로운 유물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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