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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교동도(喬桐島)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한 서해의 섬이다. 면적은 약 46.89㎢이며, 2014년 7월 1일 완공된 교동대교를 통해 강화도와 연결되어 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전자출입증 시스템을 통해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다.

위치

교동도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이루는 조강(祖江)과 예성강의 하구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황해도와의 거리는 불과 약 2.6km에 불과한 접경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강화도, 남쪽으로는 석모도를 바라보고 있다. 최고점은 화개산(華蓋山, 260m)이다.

역사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 조에는 고목근현(高木根縣)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다른 이름으로 달을참(達乙斬)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어에서 '달(達)'은 높다는 의미, '을(乙)'은 나무, '참(斬)'은 뿌리를 뜻하므로, 고목근(高木根)은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喬桐縣)이라 개칭한 것이 오늘날의 명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동도는 개성과 한양을 잇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려 시대에는 감무를 두어 방어하게 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을 설치하여 황해도·경기도·충청도의 수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교동부(喬桐府)로 있었으며, 삼도수군통어사가 부사를 겸임하였다. 삼도수군통어사는 종2품으로, 일반적인 현감(종6품)보다 훨씬 높은 지위였다.

서울 인근에 있으면서도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교동도는 조선시대 왕족의 유배지로 자주 사용되었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으며, 광해군 또한 이곳에 유배되었다. 그 외에도 임해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화완옹주 등이 유배된 바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약 3만여 명의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교동도로 피난 왔으며, 휴전 이후에도 약 100여 명이 대룡시장 인근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1995년 강화군이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교동도 역시 인천광역시 소속이 되었다.

간척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주요 섬과 여러 부속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群島)였다. 고려 시대 원나라 침입에 맞서 강화도가 임시 수도가 되면서 주변 섬들에 대한 간척이 시작되었고, 조선시대를 거치며 오늘날과 유사한 해안선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대규모 간척이 이루어져 갯벌이 농지로 전환되었으며, 1970년대에 이르러 지하수 관정과 저수지가 설치되어 안정적인 관개농업이 가능해졌다. 현재 교동도는 강화군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지닌 섬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관광

교동도에는 여러 문화유산과 관광 자원이 분포한다. 주요 명소로는 연산군 유배지(위리안치 유배지와 전시관), 교동읍성 남문(홍예문), 교동향교(고려 충렬왕 때 안향이 공자 초상을 처음 모셨다고 전해지는 향교), 화개사(고려 말 이색이 공부했다는 암자), 조선시대 한증막 터 등이 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조성한 대룡시장과, 북쪽 고향 땅을 바라보며 망향의 한을 달래는 망향대(望鄕台)가 분단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장소로 남아 있다.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7호인 '강화 교동 진오기굿'이 전승되고 있으며, 강화나들길 9번(교동나들새길)과 10번(교동머르매길)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특산물로는 꽃게, 쌀, 화방석 등이 있다.

교통

2014년 교동대교 개통 이후 강화도에서 육로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강화터미널에서 교동도 방면 간선버스(18번)가 운행되며, 강화 창후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인구

2023년 1월 기준 교동도의 인구는 약 2,8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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