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군(膠東郡)은 고대 중국의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산둥반도 동부에 위치했던 군(郡)이다. 주로 한나라부터 수나라 시기까지 존재했으며, 지역의 주요 행정 중심지 중 하나였다.
개요
교동군은 산둥반도의 동쪽, 즉 '교수(膠水)'의 동쪽이라는 지리적 명칭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졌다.
역사
서한 (西漢)
교동군은 기원전 178년, 한 문제(漢文帝) 시기에 교동국(膠東國)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이는 황자들을 제후왕으로 봉하면서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후 한 경제(漢景帝) 시기 오초칠국의 난(吳楚七國之亂) 이후 제후왕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교동군으로 전환되거나 그 일부가 군으로 편입되었다. 서한 시대의 치소(治所, 군의 행정 중심지)는 대개 험현(掖縣, 현재의 산둥성 라이저우시)에 두어졌다. 관할 구역은 험현(掖縣), 즉묵현(即墨縣) 등을 포함하여 여러 현으로 구성되었다.
동한 (東漢)
동한 시대에도 교동군은 존속하였으나, 관할 구역에 일부 변동이 있었다. 여전히 험현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때로는 북해군(北海郡)이나 낭야군(琅邪郡)과 함께 산둥반도 동부의 핵심 지역을 이루었다. 동한 말기에는 전란의 영향으로 행정 구역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魏晉南北朝時代)
위진남북조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란과 왕조 교체의 영향으로 교동군의 행정 구역은 빈번하게 변경되고 축소되거나 재편되었다.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가 다시 설치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 중심지나 관할 현의 구성도 유동적이었다. 이 시기에는 기존의 대규모 군현제가 점차 붕괴되고 작은 군현들이 난립하는 경향이 있었다.
수나라 (隋나라)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지방 행정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군현제가 주(州)현제로 통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교동군은 점차 폐지되어 주변의 다른 주(州)나 군(郡)에 편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교동'이라는 명칭은 주로 지리적 개념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같이 보기
- 낭야군 (琅邪郡)
- 북해군 (北海郡)
- 제군 (齊郡)
출처
- [1] 《한서(漢書)》 지리지
- [2] 《후한서(後漢書)》 군국지
- [3] 《진서(晉書)》 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