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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 다쓰코

교고쿠 다쓰코(일본어: 京極 竜子, きょうごく たつこ, 생년 미상 ~ 1634년 10월 22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동한 여성이다. 처음에는 다케다 모토아키(武田元明)의 정실이었으나, 남편 사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측실이 되었다.

출신과 가계

아버지는 교고쿠 다카요시(京極高吉), 어머니는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의 딸인 교고쿠 마리아이다. 오빠(또는 동생이라는 설도 있음)는 교고쿠 다카쓰구(京極高次), 동생으로는 교고쿠 다카토모(京極高知)가 있다.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는 그녀의 숙부이며, 아자이 세 자매(요도도노, 하츠, 고우)와는 사촌 관계이다. 교고쿠 씨는 아자이 씨의 주인 가문으로, 오미(近江) 호북 지방의 본래 영주였기 때문에 혈통상으로는 히데요시의 또 다른 측실이었던 요도도노보다 더 명문 출신으로 평가된다.

생애

처음에는 와카사 슈고(若狭守護) 다케다 모토아키에게 시집가 2남 1녀를 낳았다. 남편 모토아키는 혼노지의 변(1582년) 이후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편에 섰기 때문에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와 하시바 히데요시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후 다쓰코는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다.

그녀는 오다와라성, 나고야성 등에 히데요시와 함께 동행했으며, 다이고의 꽃놀이(醍醐の花見)에서도 세 번째 가마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교고쿠 가문의 옛 가신 출신인 요도도노와 술잔 순서를 다투었던 일화가 알려져 있다. 그녀의 호칭으로는 오사카성 니시노마루에 저택을 받아 '니시노마루도노(西の丸殿)', 후시미성으로 이주한 뒤에는 '마츠노마루도노(松の丸殿)', 그 외에 '교고쿠도노(京極殿)', '교고쿠사마(京極様)' 등이 사용되었다.

히데요시 사후에는 오빠 교고쿠 다카쓰구가 거주하던 오쓰성(大津城)으로 몸을 옮겼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 앞서 오쓰성이 서군(西軍) 측 여러 장수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녀도 이에 휘말렸던 것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전쟁 후에는 출가하여 '주호인(寿芳院)'이라 칭하고 교토 니시토인(西洞院)에 기거하였다.

오사카 여름의 진(1615년) 이후에는 요도도노의 시녀(기쿠)를 보호했으며, 로쿠조가와라에서 처형된 히데요리의 아들 구니마쓰(国松)의 시신을 인수해 세이간지(誓願寺)에 매장했다. 간에이 11년(1634년) 9월 1일, 교토 니시토인 저택에서 사망했다. 법명은 수방원전월황성구대선정니(寿芳院殿月晃盛久大禅定尼)이며, 묘소는 교토시 나카교구의 세이간지에 있었으나 현재는 호코쿠묘(宝国墓)에 있다.

평가와 기록

교토의 세이간지에는 그녀의 초상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나이 40세 전후에 그려진 법체상(法体像)으로 그녀의 단아한 외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일본의 여러 대하드라마와 영화, 무대 작품에서도 다루어진 인물로, NHK 대하드라마 《고우 ~공주들의 전국~》(2011년) 등에서 등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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