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조선백자 요지(廣州 朝鮮白磁 窯址)는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일대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1985년 11월 7일 대한민국 사적 제314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명칭은 '광주조선백자도요지'였으나 2011년 7월 28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지정 면적은 382,738㎡에 달한다.
이 일대는 도자기를 굽는 데 필요한 백토가 산출되고, 연료인 번목(燔木)을 조달할 수 있는 수목이 풍부하였으며, 한강을 통한 제품 운송이 편리하고 수요처인 한양과 가까워 조선시대 관영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조선 세조 13년(1467년) 무렵 궁중 주방인 사옹원(司甕院)의 분원(分院)이 광주에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관영 수공업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영조 28년(1752년)에 분원이 현재의 분원리 지역으로 이전되었으며, 1883년(또는 1886년) 민영화될 때까지 약 130여 년간 운영되었다.
광주 일대의 요지 분포는 퇴촌면, 초월읍, 곤지암읍, 도척면, 남종면, 남한산성면, 송정동, 탄벌동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총 220여 개소의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이 중 주요 발굴조사로는 1965년 국립박물관이 퇴적층 일부를 확인한 퇴촌면 도마리요지, 1985년과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이 가마구조와 작업장을 확인한 남한산성면 번천리 제5호요지, 초월읍 선동리 제3호요지 등이 있다.
가마의 구조는 주로 오름가마(등요, 登窯)이며, 계단식가마도 일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다양한 형태의 백자, 청화백자, 철회백자, 청자 등이 있으며,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등의 명문(銘文)이 새겨진 도자기 조각과 간지(干支)가 새겨진 도편들이 발견되어 제작 시기와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초기 요지(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서는 가는 모래받침에 직립된 수직굽 백자가 주로 제작되었고, 유색은 옅은 설백색으로 빙렬(氷裂)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6세기 중엽부터 말기까지는 '별(別)', '좌(左)', '우(右)' 명문의 굽다리 조각과 다양한 기형의 백자가 출토되었다. 17세기에는 간지명(干支銘)이 새겨진 도편이 출토되어 분원이 약 10년에 한 번씩 시장 내 수목이 무성한 곳을 따라 이동하였다는 문헌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금사리요지와 분원리요지가 중심이 되었으며, 특히 분원리요지에서는 문방구, 제기, 병, 호 등 다양한 백자와 청화백자가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이 일대는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가장 우수한 품질의 백자를 생산하던 중심지였으며, 조선 도자사 연구의 핵심적인 유적으로 평가된다. 현재 국가유산청이 지정·관리하는 사적 구역 내에는 68개소의 가마터가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