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김씨(廣州 金氏)는 경기도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고종 때의 무관 김녹광(金祿光)이다.
시조 및 연원
광주 김씨의 시조 김녹광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 아들인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7세손으로 전해진다. 김녹광은 1236년(고려 고종 23) 몽고군이 침입하였을 때 상장군(上將軍)으로 출전하여 전공을 세웠고, 이 공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의성 김씨(義城 金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광주를 본관으로 삼고 그를 시조로 하였다.
분파 및 계통
광주 김씨는 후에 영남계와 황해계로 구분된다. 영남계는 다시 동래파와 밀양파로 나누어진다. 영남계의 파조는 김남물(金南物)이다. 김남물의 조부는 김굉(金閎), 부친은 김훤(金晅)이다. 김남물은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 부사를 지내고 만년에 안동으로 낙향하였다. 그의 아우 김개물(金開物)은 원 간섭기에 중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광주 김씨의 파명(派名)으로는 참의공파, 호수공파, 해수공파, 양무공파, 구몽공파, 구봉공파, 은간공파, 옥산공파 등이 있다.
입향 경위
김남물의 3세손인 공조 참판 김차문(金次文)이 1400년대 전반에 동래(현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입향하였다. 광주 김씨 문중은 동래 지역의 원오향가(原五鄕家) 중 한 가문으로, 해수(海叟) 김우정(金禹鼎, 1551~1630)과 재종제 호수(湖叟) 김기(金琦)로 인하여 대표적 향반(鄕班)으로 자리 잡았다. 그 자손들은 동래 향교에서 중요 직임을 맡으며 동래의 주요 사족(士族)이 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광주 김씨는 1,315가구, 4,332명(남 2,244명, 여 2,088명)으로 집계되었다. 2013년 현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동래구 온천동, 금정구 선동, 기장군 정관읍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주요 집성촌으로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밀양시 하남읍 대사리·귀명리 등이 있으며,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일부 지역에도 집성촌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련 유적
부산 지역의 광주 김씨 관련 유적으로는 온천동 문중의 재실인 향경재(鄕敬齋)와 반송 문중의 재실인 운봉사(雲峰祠)가 있다.
참고 사항
광주 김씨(廣州 金氏)는 경기도 광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를 본관으로 하는 광산 김씨(光山 金氏, 약 92만 6천 명)와는 다른 성씨이다. 광산 김씨는 시조가 김흥광(金興光)이며 인구 규모가 큰 반면, 광주 김씨(廣州 金氏)는 상대적으로 중소 규모의 본관 성씨로 알려져 있다. 통계청 자료에서 본관별 김씨 인구가 세분화되어 집계되지 않아 정확한 전체 인구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수천 명 이상이 광주를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