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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조 (후연)

광조(光祚)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전진(前秦)과 후연(後燕)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자(字)도 전하지 않는다. 기주(冀州) 청하군(清河郡) 출신이다.

광조는 본래 환관으로 전진(前秦)의 천왕 부견(苻堅)을 섬기며 용종복야(冗從僕射)를 지냈다. 전연(前燕)이 멸망한 후 장안(長安)으로 망명해 온 모용수(慕容垂)를 부견이 신임하자, 광조는 부견에게 모용수가 남의 밑에 오래 있을 인물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어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부견은 이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용수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비수대전(淝水之戰, 383년)에서 전진이 대패한 이후, 모용수가 반란을 일으켜 후연을 건국하자, 광조는 부견의 아들 장락공 부비(苻丕)의 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정령족의 적진(翟真)과 합류, 양평태수 소흥(邵興)을 도와 후연군과 싸웠다. 그러나 양국(襄國)에서 후연의 관군대장군 모용륭(慕容隆)에게 패하였고, 소흥은 사로잡혔으며 광조는 업(鄴)으로 도망쳤다.

이후 광조는 부비의 명으로 진양(晉陽)에 가서 병주자사 왕등(王登)과 표기장군 장자(張慈)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이들은 병력 부족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임무에 실패한 광조는 봉부(封孚)와 함께 동진(東晉)으로 도망쳐 귀순하였고, 동진 조정은 그를 하북군수영(河北郡守營)으로 임명하여 제북(濟北)의 부양(濮陽)에 주둔하게 하였다.

387년 정월, 온상(温詳)이 후연군에게 패하여 도망친 후, 광조는 봉부, 봉권(封勸) 등과 함께 후연에 투항하였다. 후연의 성무제(成武帝) 모용수는 광조를 용서하고 예전처럼 대우하였으며, 옛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모용수는 광조에게 금과 비단을 하사하려 했으나 광조가 이를 사양하자, 그의 충성을 인정하여 중상시(中常侍)로 임명하였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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