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제(光緖帝, 1871년 8월 14일 ~ 1908년 11월 14일)는 중국 청나라의 제11대 황제이다. 본명은 아이신기오로 자이티얀(愛新覺羅 載湉)이며, 묘호는 덕종(德宗), 연호는 광서(光緖)이다. 만주어 이름은 바다랑가 도로 한(Badaranga doro han)이다.
광서제는 청나라 역사상 최초의 방계 혈통 출신 황제로, 1875년 동치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이모인 서태후(西太后)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4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의 부친은 순현친왕 혁현(奕譞)이며, 모친은 서태후의 여동생인 적복진 엽혁나랍씨이다.
재위 기간 동안 광서제는 초기에는 동태후와 서태후의 수렴청정 아래에 있었고, 1889년부터 친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898년 무술변법(戊戌變法)을 추진하면서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등 개혁파 지식인들을 등용하여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한 근대화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개혁은 보수파의 반발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밀고로 실패하였고, 광서제는 서태후에 의해 유폐되어 이후 사망할 때까지 실권 없는 허수아비 황제로 지냈다.
광서제 재위 시기에는 청일전쟁(1894~1895)에서의 패배로 타이완이 일본에 할양되었고, 의화단 운동(1899~1901)과 8국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 등 청나라의 쇠퇴가 가속화되는 격동의 시기였다.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에는 서태후와 함께 시안으로 피난하기도 하였으며, 그가 총애하던 후궁 진비(珍妃)는 서태후의 명령으로 살해되었다.
광서제는 1908년 11월 14일 사망하였다. 공식 사인은 오랜 지병으로 알려졌으나, 시중에는 독살설이 제기되었다. 2008년 그의 유해를 X선으로 분석한 결과 머리카락과 위장에서 다량의 비소 성분이 검출되어 독살당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었다. 독살의 배후로는 서태후 또는 위안스카이 등이 지목되었으나, 정확한 범인은 확정되지 않았다.
그의 사망 다음 날인 11월 15일, 서태후도 사망하였다. 광서제의 후계자로는 조카인 푸이(溥儀)가 선통제(宣統帝)로 즉위하여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광서제의 능은 청서릉(淸西陵)에 위치한 숭릉(崇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