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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삼국지)

관통(管統)관통(關統)은 각각 다른 인물로, 모두 중국 후한 말기 및 삼국시대와 관련된 인물이다.


1. 관통(管統, ? ~ ?)

중국 후한 말 원담(袁譚) 휘하의 정치인이다. 청주 평원국(平原國) 출신이다.

생애 203년(건안 8년), 원담 밑에서 동래태수(東萊太守)를 맡고 있었다. 당시 원담은 아버지 원소 사후 기주를 차지한 동생 원상과의 교전에서 패하였다. 평원국 탑음현(漯陰縣)에 있던 유순(劉詢)이 반란을 일으키자 많은 성들이 호응하였다. 원담이 탄식하자 별가(別駕) 왕수(王修)가 "동래태수 관통은 바닷가 먼 곳에 있지만 절대 배반하지 않고 이리로 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과연 관통은 처자식까지 포기하고 원담에게로 왔으며, 그의 처자식은 살해당하였다. 원담은 그를 낙안태수(樂安太守)에 임명하였다.

204년, 원담은 조조와 잠시 연합해 원상을 축출한 후 조조와 결전을 벌였으나 패사하였다. 다른 성들이 투항했지만 관통만은 낙안을 지키며 복종하지 않았다. 조조는 왕수에게 관통을 설득하게 하였고, 왕수는 관통을 망국의 충신이라 여겨 결박을 풀어주고 조조에게 호송하였다. 조조는 기뻐하며 관통을 사면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 관통(關統, 215? ~ 259년?)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신료이다. 관우(關羽)의 손자이자 관흥(關興)의 적자(嫡子)였다.

생애 관흥이 요절하자 관통이 그 작위를 계승하였다. 유선(劉禪)의 공주와 혼인하였으며, 관직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까지 올랐다. 관통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 관흥의 서자인 관이(關彛)가 작위를 이었다.


참고: 위의 두 인물은 한자 표기(管統 / 關統)와 출신 배경이 서로 다르며, 각각 별개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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