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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

관복(官服)은 나라에서 정한 벼슬아치의 정복(正服)을 뜻하는 말로,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관직자(官吏)의 공식 의복 체계를 가리킨다. 한자 표기에 따라 관복(官服)은 '관직자의 옷'을, 관복(冠服)은 '관(冠)과 의복'을 포괄하는 더 넓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두 표기는 발음이 같아 동일하게 '관복'이라 읽힌다.

정의와 개념

관복은 문무백관이 궁중과 관청에서 근무할 때 착용한 모든 복식을 통틀어 이르는 상위 개념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편복(便服)을 제외한 조복(朝服), 제복(祭服), 상복(常服), 공복(公服), 융복(戎服), 군복(軍服) 등을 모두 포함하며, 좁은 의미로는 공복과 상복을 뜻하여 단령포(團領袍)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많다.

역사

삼국시대

우리나라 관복 제도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는 260년(고이왕 26) 관의 장식과 띠의 색으로 상하 등위를 구별하였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의 경우 『신당서(新唐書)』에 왕은 백라관(白羅冠)을 쓰고 대신들은 청라관(靑羅冠)·강라관(絳羅冠)을 썼으며 양쪽에 새 깃털을 꽂았다는 기록이 있어 고구려 고유의 관복 제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라는 520년(법흥왕 7) 육부 사람들의 의복 제도를 정하였고, 그 후 3년 뒤 자(紫)·비(緋)·청(靑)·황(黃) 네 가지 색으로 등급을 나눈 공복 제도를 마련했는데, 이는 중국의 사색 공복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649년(진덕왕 3)에는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받아온 의대(衣帶)를 계기로 당의 제도를 도입하여 복두(幞頭)·단령포·대(帶)·홀(笏)로 이루어진 공복 체계를 수립하였다.

고려시대

고려는 건국 직후 신라의 제도를 따랐으나, 960년(광종 11) 자·단·비·록의 사색 공복제를 정하였다. 이후 단색 공복이 사라지고 자·비·록의 세 가지 색으로 정리되었으며, 면복(冕服)을 제복으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고려의 관복 제도는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상세히 남아 있는데, 관리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복두를 쓰고 직품에 따라 자색·비색·녹색 옷을 입었으며 띠 장식의 재료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원의 침략 이후에는 몽골식 복장이 유행하기도 하였으나, 공민왕 때 관복 개정을 통해 고려의 자주적 복식 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1387년에는 새로 등장한 명(明)의 제도에 따라 관복을 개정하였고, 이는 조선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조선은 건국 후 명의 관복 제도를 참조하여 관복 체계를 정립하였다. 태종 때 관복색(冠服色)을 설치하여 백관의 조복과 제복을 상정하였고, 세종 때 조복·제복·공복·상복의 제도를 정비하였다. 흉배(胸背) 제도는 단종 2년(1454)부터 실시되었으며, 완성된 조선의 관복 제도는 성종 때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되었다.

조선의 관복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조복은 왕실의 경축일이나 조칙 반포 등의 중대한 의식 때 입었으며 양관(梁冠)과 금관(金冠)을 갖추었다. 제복은 종묘사직에 제사할 때 입었고, 조복과 구성이 같으나 청초의에 금칠을 한 양관을 쓴 점이 달랐다. 상복은 평상시 집무할 때 입는 옷으로 단령포에 사모(紗帽)를 쓰고 흉배를 달았다. 공복은 외국 사신을 접견하거나 공적 모임에 참석할 때 입었으며 상복과 비슷하나 복두를 쓰고 홀을 들었다. 융복은 전시나 사행 시에 착용하였다.

관복의 색상은 품계에 따라 달라졌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공복의 단령은 1품에서 정3품까지 홍포, 종3품에서 6품까지 청포, 7품에서 9품까지 녹포였다. 영조 때에는 3품 이상이 담홍포(淡紅袍)로 바뀌었고, 조선 후기 『대전통편』(1785)에는 3품 이하 공복의 색상이 청록색으로 변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복의 단령 색상은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었으나 현록색(玄綠色)을 선호하였다.

근대 이후

관복 제도는 갑오경장(甲午更張, 1894) 이후 간소화되기 시작하였다. 1884년(고종 21)에는 공복·상복·시복을 하나로 통합해 흉배가 달린 흑단령으로 정하였고, 이후 광수(廣袖)의 단령포는 착수(窄袖) 단령으로 바뀌어 대례복으로만 쓰였다. 1895년 『육군복장규칙』이 제정되면서 서구식 군복이 도입되었고, 1900년에는 문관복이 양복으로 정해지면서 전통적 관복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구성 요소

관복은 겉옷 위에 입는 형태로, 속에는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착용하였다. 관복에는 옷 외에도 관모(冠帽), 흉배(胸背), 품대(品帶), 홀(笏), 패옥(佩玉), 화(靴) 등의 부속 장식이 포함되었다. 품계는 주로 관모의 장식, 옷의 색, 띠의 재질, 흉배의 문양 등으로 구별되었다. 흉배는 문관의 경우 학, 무관의 경우 호랑이·표범 등 동물 문양으로 표시하여 문무관과 품급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다.

함께 쓰이는 개념

'관복'은 이후 여러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기도 하였다. 현대에는 전통 혼례복의 하나로 관복이 사용되기도 하며, 문맥에 따라 옛 벼슬아치의 공복을 가리키는 뜻 외에 '관리로 출세하도록 타고난 복'이라는 관용적 의미로도 쓰인다.

관복의 역사와 제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관련 자료로는 『경국대전』,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원전과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홍나영 외) 등의 학술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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