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백(關白, かんぱく, Kanpaku)은 일본 고대 및 중세 시기에 존재했던 관직명으로, 성인 천황을 보좌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직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의와 역할: 천황이 성년에 달한 후에도 정치의 실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직위이다. 천황의 명을 받아 행정 사무를 처리하고, 조정에 상주하는 관료들을 통솔하였다. 천황이 정무를 직접 보지 않을 때 사실상의 최고 통치자로 기능했다.
- 섭정(攝政)과의 차이: 미성년 천황이나 여제(女帝)를 보좌하여 정권을 대행하는 섭정(세쇼, 摂政)과 구별된다. 관백은 천황이 성인인 경우에 임명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다만, 같은 인물이 섭정에서 관백으로 직함만 바뀌며 권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 역사적 변천:
- 헤이안 시대: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가 외척 세력으로서 이 직을 독점하며 섭관 정치(攝關政治)를 펼쳤다. 최초의 관백은 후지와라노 모토쓰네(藤原基経, 887년 임명)로 알려져 있다.
-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면서 실권은 막부로 넘어갔으나, 관백 직위는 천황가의 의례적 권위와 조정 내부의 질서 유지를 위해 존속되었다. 여전히 후지와라 씨 계열의 세도가(세이케, 摂家)·청화가(청케, 清華家)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정권을 잡으며 관백직을 활용해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5년 관백에 취임한 후 1591년 조카 도요토미 히데토시에게 물려주고 태관백(太關白)이라 칭하며 실권을 유지했다.
- 에도 시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되면서 막부가 실권을 장악했고, 관백은 후지와라 씨 가문(고노에, 다카쓰카사, 고조, 이치조, 니조의 5섭가)에서 형식적으로 맡는 명예직으로 남게 되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관제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 어원: '관(關)'은 '관문(關門)', '백(白)'은 '명백히 하다(白)' 또는 '아뢰다(奏)'의 뜻으로, "천황의 출입과 상주(上奏)를 관장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 한국사에서의 사용: 한국 역사서(『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나 왜구 관련 기록, 통신사 기록 등에서 일본 측 최고 권력자의 직함으로 '관백' 표기가 빈번히 등장한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칭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