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는 한국어에서 두 가지 주요 의미로 사용되는 한자어이다.
1. 관례(慣例)
관례(慣例)는 "전부터 해 내려오던 전례(前例)가 관습으로 굳어진 것"을 뜻한다. 즉, 과거에 반복적으로 행해지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관행으로 정착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법률이나 규정처럼 명시적인 강제력을 지니지는 않지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들 간의 일관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회의 시 정장을 착용하거나 명함을 교환하는 방식, 특정 문화에서의 인사 방식 등이 관례에 해당한다. '관례대로 하다', '관례에 따르다', '관례를 깨다'와 같은 표현으로 사용된다. 관례는 '상규(常規)', '상례(常例)', '예규(例規)'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최근에는 '관행(慣行)'이라는 표현이 관례와 유사한 의미로 널리 사용되기도 한다.
2. 관례(冠禮)
관례(冠禮)는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 국가(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에서 행해지던 성인식(成人式)으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하나이다. 원시 사회에서 미성년자를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하던 의식에서 유래하였으며, 남자의 경우 주로 20세, 여자의 경우 15세에 거행되었다. 미혼이더라도 관례를 치르고 나면 성인으로서 대우받았다.
고대 중국의 유교 의례를 정리한 경전인 《의례(儀禮)》17편의 제1편이 관례의 절차를 다룬 「사관례(士冠禮)」인 점에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원복(元服)'이라고도 불렸으며, '원(元)'은 머리, '복(服)'은 착용하다의 뜻으로 머리에 관(冠)을 쓰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에서는 『가례』의 유입과 더불어 관례 의식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례』 유입 이전인 고려시대에도 『고려사』에 광종·예종·의종 때 왕태자의 관례를 행한 기록이 나타나, 고려 왕실에서도 유교식 관례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예서에 따라 관례를 행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예서보다 간소하게 행해졌으며 관례가 혼례 절차에 흡수되는 경향을 보였다.
관례의 의식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관례를 치르기 전에 사당에 제를 올리고 길일을 택하며, 빈객을 초청하는 준비 절차를 거친다. 의식 당일에는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갓을 씌우는 가례(加禮), 술로써 예를 행하는 초례(醮禮), 관례자에게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지어 주는 자관자례(字冠者禮)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여자의 경우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筓禮)가 행해졌다.
한국에서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전통적 의미의 관례는 쇠퇴하였다. 다만 여성의 계례는 오늘날 일부 전통 혼례식에 흡수되어 남아 있는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원복(元服)'으로 불리며 시대에 따라 변형·보존되었고, 현재 일부 전통 문화 공간에서 관례의 잔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관례(官隷)는 관가에서 부리던 하인을 뜻하는 말로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