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도(郭圖) 는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공칙(公則)이며 예주 영천군 출신이다. 생몰년은 ? ~ 205년(건안 10년)이다. 영천태수 음수의 밑에서 계리(計吏)를 지냈고, 이후 원소(袁紹)에게 발탁되어 그의 모사(謀士)로 활동하였다.
191년(초평 2년), 장도·순심·고간·신평과 함께 기주목 한복을 설득하여 기주를 원소에게 넘기는 데 기여하였다. 195년(흥평 2년)에는 사자로서 헌제에게 파견되었으며, 원소에게 헌제를 맞이할 것을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헌제전》과 《후한서》 원소전에는 이 계책이 저수의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기록 간 차이가 존재한다.
199년(건안 4년), 저수와 전풍이 조조에 대한 지구전을 주장하자 심배와 함께 단기결전을 주장하였고, 원소는 이를 채택하였다. 또한 곽도는 감군(監軍)의 지위에 있던 저수의 세력이 너무 강하다고 참언하여, 감군의 권한을 저수·곽도·순우경 세 명의 도독(都督)으로 분할시켰다.
200년(건안 5년) 관도대전 당시, 조조가 오소(烏巢)를 습격하자 곽도는 원소에게 조조군의 본진을 급습할 것을 진언하였다. 부장 장합은 오소를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원소는 경기병만을 오소에 보내고 본진을 공격하였다. 결국 오소가 함락되자 곽도는 책임을 장합에게 전가하였고, 이에 장합은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202년 원소 사후, 곽도는 신평과 함께 원소의 장남 원담(袁譚)을 후계자로 지지하였고, 심배·봉기는 원상(袁尙)을 지지하여 원씨 가문의 내분이 발생하였다. 205년, 원담과 함께 남피(南皮)에서 조조에게 패하여 사망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무능한 모사로 묘사되며 원씨 멸망의 주범으로 그려지는데, 악진의 화살에 맞아 해자로 굴러떨어져 죽는 것으로 나온다.
곽도(藿島) 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에 속한 섬이다. '곽(藿)'은 미역을 뜻하는 한자로, 섬에 미역이 많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미역섬'이라고도 불린다. 1700년경 무렵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해안선 길이는 약 2.5km의 작은 섬이다. 맹골군도에 속하며 진도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섬 지역 중 하나이다. 미역의 품질이 좋기로 알려져 있으며,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수질이 깨끗하여 겨울철 감성돔 낚시터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