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레테 전투는 711년(일부 사료는 712년으로 기록)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로,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정복, 즉 알안달루스 정복의 시발점이 된 주요 전투이다. 전투는 스페인 남부에서 서고트 왕국의 국왕 로데리크(Roderic, 羅德里克)가 지휘하는 군대와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장군 타리크 이븐 지야드(Tariq ibn Ziyad)가 이끄는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다. 우마이야 군대는 대부분 베르베르인과 일부 아랍인으로 구성되었다.
배경. 705~706년경 탕헤르(현재 모로코) 정복 이후, 이슬람 세력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남부 해안 지역을 여러 차례 약탈하였다. 타리크 이븐 지야드는 711년경 북아프리카에서 해협을 건너 현재의 지브롤터 지역에 상륙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서고트 왕국은 로데리크 즉위를 둘러싼 내부 분열과 위티자(Wittiza) 왕가의 지지세력 간 갈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후의 사료들 중 일부는 로데리크의 왕위 계승이 무력적 성격을 띠었다고 전하며, 이 같은 내분이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전투의 경과와 결과. 전투의 정확한 장소는 학계에서 논쟁 대상이다. 전통적으로 스페인 남부 카디스 주의 과달레테강 유역으로 알려져 왔으나, 현대 학계에서는 일부 연구자들이 알모도바르강 부근 또는 트란스둑티네 고지대(Transductine Promontories) 일대를 유력한 후보지로 제시하기도 한다. 당시 사료인 모즈아랍 연대기(Mozarabic Chronicle)는 전투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트란스둑티네 곶 부근이라고만 언급한다. 이후 아랍어 사료들은 승패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서고트 군대 내부의 내분과 반란설을 전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역사적 신뢰도는 연구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전투 결과 우마이야 군대가 승리하였고, 로데리크 국왕은 전사하거나 전후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서고트 왕국의 주요 귀족 다수가 전사하면서 왕국의 방어 체계가 붕괴되었으며, 이후 이슬람 세력은 수도 톨레도를 비롯한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서고트 왕국의 멸망 과정과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 세계의 일부인 알안달루스로 편입되는 과정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간주된다.
연대에 관한 논쟁. 전투가 벌어진 시기에 대해서도 사료 간 차이가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711년으로 기록되며 대부분의 현대 학설이 711년 7월 19일경을 유력한 시점으로 제시하나, 모즈아랍 연대기는 712년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아랍어 사료들이 제시하는 구체적 날짜는 7월 25일 또는 26일이라는 기록도 있다.
후대의 전승. 타리크가 상륙 후 배를 불태웠다는 이야기, 로데리크가 위티자의 아들들('위티자의 아들들'이라는 집단)의 배신으로 패배했다는 서술, 백작 율리안(Count Julian)이 딸의 사건에 대한 복수로 원정을 도왔다는 등 여러 전설이 전투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으나, 이러한 이야기들의 역사적 신뢰성은 당대 사료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으며 학계에서 회의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전투에 대한 주요 당대 사료로는 754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모즈아랍 연대기와, 이후 여러 세기 뒤에 저술된 다양한 아랍어 연대기들이 있다. 사료의 수가 제한적이고 서술 간 차이가 있어, 전투의 세부 사항 상당수에 대해서는 학술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