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은 사회심리학에서 정립된 인지 편향의 하나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곳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개인은 선한 행동은 결국 보상을 받고 악한 행동은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뿌린 대로 거둔다"거나 "마땅히 받아야 할 결과를 얻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곳으로 인식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보인다.
이 개념은 1960년대 초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빈 J. 러너(Melvin J. Lerner)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러너는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연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부당한 고통이나 불행을 목격할 때 관찰자들이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발견하였다. 1966년 캔자스 대학교에서 수행된 초기 실험에서, 러너와 그의 동료들은 참가자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전기 충격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연민을 보이다가, 고통이 지속되고 개입이 불가능해지자 피해자를 거부하고 가치를 하락시키는 경향을 확인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정보가 주어졌을 때는 이러한 비하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러너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이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 belief in a just world)을 유지하려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믿음은 개인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유지하게 해 주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 러너는 이를 행동의 결과와 관련하여 세상과 맺은 일종의 '계약'으로 보았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하고 효과적인 목표 지향적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 저서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 근본적인 착각》(The Belief in a Just World: A Fundamental Delusion)에서 자신의 연구를 종합하였다.
공정한 세상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일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증거, 즉 명백한 원인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때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에 가해진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합리적 또는 비합리적 전략을 사용한다. 합리적 전략에는 불의의 현실을 인정하거나, 불의를 방지하거나 보상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비합리적 전략에는 부인, 철회, 사건의 재해석이 포함되며, 특히 피해자의 성격이나 행동을 재해석하여 그들이 고통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 현상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초, 사회심리학자 직 루빈(Zick Rubin)과 레티시아 앤 페플라우(Letitia Anne Peplau)는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측정하는 척도를 개발하였고, 이후 연구자들은 이 척도를 활용하여 다양한 맥락에서의 개인차를 연구해 왔다. 후속 연구는 공정한 세상 믿음이 다차원적 개념임을 밝혀냈으며, 특히 '자신을 위한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개인적 영역)과 '타인을 위한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일반적 영역)의 구분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전자는 긍정적인 정신 건강 및 삶의 만족도와 관련이 있는 반면, 후자는 피해자 비난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공정한 세상 가설을 강간 및 가정 폭력, 질병, 빈곤, 괴롭힘 등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적용해 왔다. 일반적으로 강한 공정한 세상 믿음을 가진 관찰자일수록 피해자에게 고통의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일관되게 관찰되었다. 다만 괴롭힘(집단 따돌림)의 경우에는 반대의 결과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는 공정한 세상 믿음이 행동을 규율하는 '계약'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러너의 이론과 일치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공정한 세상 가설은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널리 연구되어 온 개념으로,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등 여러 국가와 문화권에서 그 현상이 확인되었다. 한국에서도 이 개념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한국어판 정당한 세상에 대한 믿음 척도(K-BJWS)의 타당화 연구 등이 수행된 바 있다.